가을 풍경
가을 풍경
  • 중부매일
  • 승인 2021.10.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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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청명한 가을 하늘에 국화 향기가 그윽하다. 오색 빛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공을 들였다.

해마다 이름표를 붙여 겨울 내내 눈비 맞혀가며 씨를 받아서 4-5센티씩 잘라 삽 목을 했다. 네모난 모래상자에 상토를 석어 꽃아 놓고 습도가 마르지 않도록 물을 주고 채광 막을 쳐서 직사광선을 막아 주는 등 갓 태어난 신생아 돌보듯 하였다. 활기를 띠고 새순이 올라오면 땅속에 하얀 실뿌리를 내린다.

작은 화분에 옮겨 심어 놓고 다시 정성을 드린다. 국화의 이름은 수없이 다양하다. 뿌리를 내리지 않고 새싹을 심어 봄부터 가지치기를 해서 365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듬어 보았다.

어느 해던가 마을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함양으로 국화 축제를 관람한 적이 있다. 그 곳에서 본 국화꽃을 떠 올리며 한화분에 두세 가지의 국화를 심어서 연출도 해본다.

국화를 가지고 분재를 하는 이도 있었다.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나름 정성을 들이니 집안 구석구석에서 가지가지의 색깔로 피어나는 국화가 예쁘기만 하다.

대문입구에 금잔화와 사랑 초는 여름 내내 꽃을 피우며 손님을 맞이했다. 겸손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는 해바라기의 늠름한 자태도 믿음직스러웠다. 반갑지 않은 얌체족 불청객인 청솔모의 출현으로 일찌감치 생을 마감했지만 먹고 먹히는 세상의 이치를 어쩔 것인가.

앞마당의 호두나무 두 그루에 호두가 많이 열렸지만 하나도 수확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가시 속에 알밤도 채 익기 전부터 청설모는 도둑질을 해대는데 아나 무인 격이었다.

정말 남이야 어찌되든 말든 이기적인 행동에 머리가 뒤흔들렸다. 마치 요즈음 아옹다옹 서로 상대방 헐뜯어 약점을 밝히려는 각 당의 정치싸움을 보는 듯하다.

주렁주렁 콩 넝쿨을 매단 옥수수 나무에 옥수수도 남겨 두질 않으니 부지런한 주인은 양파 망을 씌워 그놈들과 싸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참깨와 들깨도 수확을 했고 그 자리에 청순한 모습으로 가을 김장 배추가 풋풋한 청소년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담장위에 풋 호박은 애교를 부리고 넉넉한 모습으로 세월을 견딘 늙은 호박도 곱고 곱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는 간데없고 메뚜기 떼들이 김장밭을 풀풀 날고 있다. 이마를 마주한 수수목도 양파자루를 쓰고 있다. 그 위로 고추잠자리들이 낮잠을 즐기는 가을 풍경이 우습게 느껴진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시인의 시가 떠올려진다.

'가을의 의미'

가을은 멀쩡한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지는 낙엽이 그러하고/ 부는 바람이 그러하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고/ 바라만 봐도 사색이 많아지는 계절/ 다가오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많아서일까// 그도 그럴 것이 온갖 꽃을 피우고/ 온갖 새들이 노닐 다간// 숲속의 나무들도/ 하나둘 갈색으로 변하고// 산다는 건 무엇이고/ 삶이란 또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거라 했다.(생략)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추적추적 내리던 가을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보는 햇빛이 그리워 집집마다 고추를 널고 건조대에 빨래가 펄럭인다. 골목 안에 국화꽃도 사람들의 마음을 희망으로 인도하는 듯하다.

갈대와 억새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무심천 강변을 수놓은 지 오래다. 쪽빛 하늘이 곱기만 하다. 오랜만에 경로당에 어르신들을 불러 시 한수 들려 드리며 가을을 만끽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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