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남쪽 바다의 임금을 숙이라 하고, 북쪽 바다의 임금을 홀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 했다.

숙과 홀이 때마침 혼돈의 땅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혼돈은 숙과 홀에게 아주 융숭한 대접을 하였다.

그런데 이 혼돈에게는 이목구비가 없었다. 숙과 홀은 혼돈에게 보답을 하고 싶어 진지한 의논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람은 누구나 일곱 구멍이 있어서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이 혼돈에게만은 그게 없다.어디 한번 시험 삼아 구멍을 뚫어주자." 이렇게 숙과 홀은 의논의 합치를 보고 날마다 한 구멍씩 뚫었다. 7일이 지나자 그만 혼돈은 죽고 말았다.

장자의 철학우화에 나오는 '죽어버린 혼돈'에 대한 내용이다.

구멍을 뚫어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야 인위적인 사람의 행위를 두고 말함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은 인위적으로 사물에 대한 가치 기준을 설정한 뒤 그것을 가지고 세상을 이끌어 가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게 있어서 지난 세월은 거의가 혼돈의 안개 숲을 헤매는 시행착오가 아니었을까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범해 왔던 혼돈의 우를 때론 합리화로,때론 조직의 관행으로 치부하며 피하지 않았나 싶다.

"완전한 질서가 있는 결정론에서도 혼돈이 나오고,마구잡이 같이 보이는 혼돈의 내부에도 상당한 질서가 존재한다."고 물리학자 최무영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혼돈과 질서'는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공직 퇴직 후 제2의 직장에서 12 년 간 분주히 지내왔던 지난날을 반추하며 서너 달 남은 퇴임을 앞두고 막연하게나마 앞으로의 삶을 구상해 보아야 할 시간을 맞은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름대로 깜냥껏 살아 왔다고 자부하면서도 무시로 찾아드는 저 혼돈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아무래도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 가에 있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는 법정스님의 말씀대로 진작 버려야 했을 불필요한 것들을 아직도 의뭉스럽게 껴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45년 간 직장을 통해 느낀 점은 지식과 정보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과제는 누가 뭐래도 인재양성이라 할 수 있겠다.그리고 조직의 구성원인 사람과의 조화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요즈음 더 절실히 여겨진다.

그 중요성을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비유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하모니가 가능한 것은 아주 작은 캐스터네츠에서부터 큰 수자폰에 이르기까지 역할 분담이 뚜렷하고 각자의 소리가 다르지만 지휘자의 일사불란한 지휘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훌륭한 연주가 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연습과 자신감, 그리고 단원 개 개인이 연주 자체를 즐길 때 비로소 가능하다.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직장도 마찬가지로 단기적인 노력과 투자로 효과를 성급히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튼실하게 다져진 기초 위에 미래를 향한 비전을 품고 훈련과 학습이 반복되어지면서 조직원 모두가 긍정적인 사고로 근무할 때 목적 달성이 가능할 것이다.

절기의 바뀜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조석으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이제 나도 차분한 심정으로 지난 시간들을 가지런히 정돈해야 되지 않을까? 돌아서 가는 모습이 욕되지 않도록….

세상과의 타협보다 자신과의 타협이 더 어렵고 망설여지는 요즈음, 안단테로 일관했던 어제였다면 오늘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알레그로로 전환하자.그리고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무시로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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