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마을신문 기자들의 '세상 엿보기'
김승진 시민기자 (남제천 봉화재 사람들)

우리가 사는 시대에 경계라는 개념은 매우 일반적이다. 나와 너, 내 것과 네 것, 내 민족 다른 민족, 내 나라 남의 나라 등으로 구분하는 데 너무도 익숙하다. 아마도 이성에 기반한 합리성과 소유의식을 중시하는 근대가 만들어낸 산물이 아닌가 한다.

제천시 덕산면은 적어도 땅에 있어서는 근대적 개념이 정착하지 않은 예외적인 지역일 듯싶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덕산면 어디를 가 보아도 대체로 집에 담장이 없다는 사실이 다른 어느 지역과 비교해 확연히 눈에 띄기 때문이다. 기존에 있는 집도 울타리가 없어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집을 새로 짓는 경우에도 동일하다. 담장이 아예 없이 돌로 축대를 쌓은 정도로 집의 경계를 표시한다. 혹여 담장을 쌓았다 해도 아주 낮게 쌓아 안팎을 구분하는 시늉만 낸다.

경계를 짓지 않는 것은 비단 담장에 한정되지 않는다. 논밭을 가도 비슷하다. 이 논과 저 논의 구분은 아주 낮고 가느다란 흙더미로 표시된다. 그러므로 논 모양도 정사각형이라기보다 다소 삐뚤빼뚤한 모양이 연출된다. 밭은 더 하다. 도무지 집이 어디까지이고 밭이 어디까지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몇 해 전 필자가 사는 집 옆에서 경계를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밭 옆에 집을 지으려 하는데 집을 지으려 하는 측이 측량 결과를 가지고 경계를 지으려 하자 밭 주인이 하는 말이 "그 밭은 일제시대부터 할아버지가 농사지어 오던 밭인데 저기 있는 뽕나무와 여기 돌무더기까지가 우리땅"이라고 항변한 것이다. 당연히 그 할아버지가 졌다. 순진한 주장이긴 했지만 그만큼 이 지역사람들의 소유관념은 다분히 관행적이고 정서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례라 하겠다.

과거의 관행적인 경계가 현대적인 측량결과를 이길 수는 없다. 최근 들어 경계분쟁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은 소유의식이 심화된 현대세계에서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과거의 측량결과 연필심 두께 만큼의 차이가 발생해 물고 물리는 현상을 낳았던 것을 지금에 와서 컴퓨터화된 측량기술로 보정해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 있다. 집, 논, 밭 여기저기에 박혀 있는 빨간 말목이 늘어가는 것은 정교한 측량기술의 결과이자 내 것을 찾고 내 권리를 찾겠다는 소유의식과 경계의식의 증표들이다.

초가지붕을 헐고 슬레이트로 대체했던 70년대식 마을개선사업을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듯이 정교한 측량으로 분명한 경계 짓기를 문제 삼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모호한 경계, 아니 경계 없음 속에 스며있는 지역주민들의 삶의 태도 내지 삶의 양식이 부지불식간에 소멸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다.

담장은 나와 너를 구분하는 표식일 뿐만 아니라 나 밖의 사람을 불신해서 경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거꾸로 경계를 만들지 않은 것은 믿을만한 이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이 지역사람들은 백 년 동안 절도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주민 상호간에 신뢰가 아주 깊다. 그것은 곧 남의 재물을 탐내지 않을 정도로 집집마다 경제적 수준이 비슷하고, 각자가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으며(중략) 살던 곳을 편안히 여기고, 각자의 풍속을 즐거워하니(중략)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담장 없는 덕산. 노자가 말하는 이상은 아닐지라도 서로에게 열려 있는 덕산의 아름다운 전통이 세월의 흐름에도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 가득하다.

물론 토지대장에는 측량의 결과를 담은 경계는 있을지언정 눈에 보이는 경계가 없다는 점은 특이함을 넘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 내지 삶의 양식이 어떤지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그 원인은 뚜렷하게 알 수는 없다. 오랜 기간 모두가 담장 없이 그렇게 살아와서 담장 없이 사는 것이 보편적인 삶의 양식이 되어서 그럴 것이라 막연히 추정할 뿐이다. 소유의식의 과잉 속에 집의 경계가 경계의식이 적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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