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유월에 아들이 결혼했다. 며느리와 첫 번째 맞는 추석이다. 차례 준비도 누가 오는가에 따라 음식이 조금씩 달라진다. 작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만날 수 없어 몸도 마음도 편했다. 처음으로 소파에 앉아 쉬었고 특집 프로그램도 보며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과 즐겁게 보냈다.

올해는 우리 부부가 코로나19 예방접종을 2차까지 완료하여 7명이 모일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바빠졌다. 늘 해오던 음식인데 해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꾀가 난다. 내 손으로 하자니 힘들고, 사는 음식은 입맛에 맞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송편이다. 며느리에게 송편 빚을 건데 만들 줄 아느냐고 물었다. 송편 빚는다는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만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내 생각을 친구에게도 말했다. 친구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시어머니 갑질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송편 빚는 일이 시어머니 갑질이라면, 지금까지 해 오던 차례 음식도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할 일이다. 갑질이란 말에 눌려 생각해보겠다고는 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솔직히 송편 빚는 일은 쉽지 않다. 요즘은 솔잎 파는 곳도 흔하지 않아 매년 사는 곳에 미리 주문해야 한다. 송편 고물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단맛이 강하면 송편 본래의 맛을 잃는다. 그런데도 송편 빚기를 고집하는 건 오감의 만족이 있다.

반죽의 느낌이 먼저다. 익반죽은 오래 치댈수록 찰지고 부드럽다. 잘 숙성된 반죽의 가벼운 감촉, 살짝 떼어낼 때 맑은 공기 소리는 귀도 즐겁다. 냄새의 맛도 즐거움의 하나다. 시루에서 익을 때 퍼지는 솔 냄새의 포만감. 솔잎 사이로 드러나는 송편의 탱탱한 윤기, 집안 가득 퍼지는 참기름의 냄새는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한다. 솜씨를 찾아보는 재미도 한몫을 한다. 납작한 것도 있고, 만두 모양도 있고, 터져서 고물이 새어 나온 것과, 만들기 싫은 듯 뭉쳐놓은 것도 있다. 모양은 각기 달라도 송편 빚을 때 나눴던 정담은 똑같이 들어 있다. 꿈도 있다. '송편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 낳는다'는 말에 딸은 매년 예쁜 송편 빚기 도전 중이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친정 당숙이 이웃 마을에 사셨다. 송편을 찌면 당숙께 먼저 갖다 드렸다. 그래서 엄마 잔소리는 매서웠다. "너희 아저씨가 꾸중하신다." 부모보다 당숙 꾸지람이 무서워 이 사람 저 사람 잔소리 들으며 익힌 솜씨는 친정집 차례음식 역사다.

그런데 한 가정의 전통과 정성이 갑질로 변질되고 있으니, 상대를 위한 배려와 익숙하고 좋은 전통에 대해 고민이 깊어진다. 내 일인데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리, 시어머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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