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우리 고장 충주에는 시민들이 사랑하는 산이 있다. 멀리 가지 않고도 산행과 산책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남산. 이곳은 금봉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산 이름보다는 산성이 더 부각되는 곳으로 그 이름도 여러 가지다.

충주산성, 금봉산성, 또는 마고산성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몇 군데 있지만 나는 마즈막재에서 오르는 임도 길을 좋아한다. 도심과 살짝 멀리 떨어져 있어서인지 이곳에서는 이른 아침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요즘 같은 때는 더 없이 좋은 등산 코스다. 말이 등산이지 전망대까지만 오르내리는 내게는 길이 익숙해져서인지 이제 산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내 기준으로 왕복 한 시간 반에서 길게는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니 산책 치고는 그래도 빡센 운동이라 거르지 않으려 애쓴다.

산바람이 몰고 온 가을이 자리를 깔기 시작했을 무렵 거추장스러운 모자를 벗어던지고 톡톡 뛰어내리는 도토리와 반항하듯 뛰쳐나온 작은 산밤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우리 엄마는 너를 뫼-밤이라고 불렀지…" 한숨처럼 터져 나오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뒹구는 빈 밤송이에 쓸쓸하게 머문다. 제 멋대로 떨어져 나와 뒹구는 알밤을 주워 빈 밤송이에 넣어보는 부질없는 행동을 멈추고 주머니에 넣었다. 앞서간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뜻밖의 수확이 양쪽 주머니가 다람쥐의 양볼처럼 볼록하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도착한 전망대에서는 충주시내의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시내가 선명하게 뼈대를 드러내는 때가 대부분이지만 또 어떤 날은 구름바다에 잠겨 그 속을 하나도 드러내지 않을 때가 있다. 구름의 붓 칠이 파란 하늘에 더욱 아름다운 날이면 게으름에 뭉그적거리는 몸뚱이를 구슬려 산에 오르게 한 마음을 칭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얼마 전부터 산을 내려오는 길에 새롭게 마주치게 된 가족이 있다.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진돗개와 품종은 잘 모르겠지만 주인의 손에 이끌려 나란히 산책을 하는 수컷이 그 가족이다. 새끼를 낳은 개는 예민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에는 긴장하고 경계하며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어야만 했다. 사람들의 그런 반응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견주는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눈 맞춤을 피한 채 한 길가로만 줄을 꼭 잡고 천천히 걷는다.

개들 또한 주인의 이끌림에 잘 따라주고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살짝 올라오는 긴장감은 매스컴을 통해 심심찮게 접하게 된 사고 때문일 것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개를 싫어하거나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두려워 할 것 같아요"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난 어느 날 인사를 건네며 한 말이다. 그래서 더 조심해서 산책을 시킨다는 견주의 반려견에 대한 깊은 애정은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며칠 전에는 주인을 잘 따른다는 이유로 목줄을 하지 않은 대형견 두 마리를 풀어놓고 산책시키는 사람 때문에 하산 길에 크게 놀란 적이 있다.

"개 목줄은 꼭 해서 잡고 다니세요. 이러다 큰일 나요. 이렇게 풀어놓고 다니면 사람들도 놀라고 신고당하면 벌금도 물어야 한다고요" 갑자기 나타난 대형견에게 놀란 등산객을 대신해서 그가 나서서 한 말이다. 우리 개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것은 개 주인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견종과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개는 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견주들은 상대에 대한 배려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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