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1.반환(返還-빌리거나 차지했던 것을 되돌려줌)

3천만원어치 고통을 겪은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처음 의뢰인은 자신의 고통은 1억원을 넘기는 고가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고통 종류 별로 가격이 매겨져 있는 시세표를 보여주었다. 의뢰인의 고통은 대략 3천만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어떤 의뢰인은 시세표를 보고도 이런 헐값에 고통을 팔고 싶지 않으니 자신이 고통을 받은 만큼 가해자에게 그대로 고통을 되돌려 주고 싶다고 한다. 고통의 반환(返還)을 바라는 것이다.

고통의 반환은 고대 함무라비 법전 같은 고대 국가의 법에서 종종 발견된다. '눈에는 눈으로써, 이에는 이로써'라는 말로 간단히 설명된다. 탈리오의 법칙(Lex Talionis)이라고 부르는 이런 동해보복 사상은 원시 미개사회규범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하지만 현대 대부분의 문명국에서는 고통의 반환은 허용되지 않으며 우리나라 역시 그렇다.

2.환전(換錢-화폐와 지금을 교환하는 일)

본인에게 남은 고통의 상처는 남이 같은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치유되지 않는다. 결국 의뢰인의 심적 고통을 비싼 값에 거래하는 것이 고통을 준 자에 대한 응징이고 개인의 차원에서 정의(正義)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요즈음은 이를 일컬어 금융치료라고도 한다. 지나치리만큼 적절한 신조어다.

언뜻 보면 고통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가진 영화에서나 등장할 것만 같이 기괴하게 들린다. 고통의 환전은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 늘 있는 대화의 주제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고통의 환전을 위해 겪은(혹은 내가 가한) 고통의 양과 질을 평가하여 돈으로 환산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통의 적정가에 대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감수성은 천양지차다. 사건을 보는 시각이 다르고, 책임질 사람의 경제력이나 처해진 상황 등 각종 변수도 많다. 당사자 사이 정의의 폭을 좁히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매달려 보기도 한다. 고통을 환전하는 일은 역시 종합예술이다.

3.위자료(慰藉料-불법행위로 인하여 생기는 손해 가운데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금)

고통환전을 통해 받는 돈을 법률 용어로 위자료라 한다. 위자료는 추상적 개념에 불과했던 정의(正義)가 현실에서 구체적 상황에 맞춰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니 (법조인의 관점에서는) 정의의 현신(現身)이다.

위자료는 어찌되었든 돈이므로 돈이 정의라는 말에 반감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잘못의 대가로 눈이 뽑히거나 이가 부러지는 잔인한 상황을 면하는 대가로 돈을 지급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인다. 탈리오의 법칙이 여전히 유효했다면 변호사는 정의를 확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남의 눈을 뽑거나 이를 부러뜨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위자료 덕에 협상을 통해 돈을 청구하면서 젠틀하게 정의를 확인할 수 있으니 변호사 입장에서도 다행스런 일이다.

고통의 환전표는 축적되어 있는 법원의 판결문이다. 판결문에는 고통의 가격이 각각의 케이스별로 정리되어 있다. 물론 유사한 사건은 있어도 같은 사건은 없다. 변호사는 유사한 사건 간 사실관계를 세밀하게 비교하고 가해자의 자력을 고려하여 현실적인 위자료를 정한다.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상대방을 윽박질러 정신승리를 하는 것보다 현실적이고 균형잡힌 위자료로 신속하게 협상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4.협상의 품격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변호사

최근 외지 변호사가 법적 쟁점이나 기준을 무시하고 반쯤은 협박하며 우리 의뢰인에게 위자료 협상을 요구해왔다. 그는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의뢰인을 핍박하더니 차츰 위자료를 깎아주겠다면서 흥정하듯 접근하였다. 그런 품격없는 행동에 도의적으로 위로금을 지급하려던 의뢰인은 선의를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건은 이전투구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협상의 실패가 모두에게 피해를 준 사례이다. 결국 고통환전의 마지막 단추는 협상의 품격이다.

위자료가 문제되는 사건이 성공했다고 평가되려면 업무처리는 신속하고, 결과에는 균형감이 있으며, 협상과정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지난주에만 두 건의 위자료 협상을 종결하였다. 누구는 쉽게 성공했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고난도 종합예술 행위였고, 치열하게 다툰 형사소송에서 무죄선고를 받아낸 만큼이나 보람있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