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문학] 허건식 체육학박사·WMC 기획경영부장

동양은 분명히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서양보다 문명이 주가 되어 발달했고, 문명을 자랑하는 대제국들이 흥망성쇠를 반복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헤게모니적 역할을 하는 국가들은 대체로 서구권, 그것도 구미권에 속한다. 동양에 밀렸던 서양이 근대 들어 세계 패권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산업혁명만이 아니다. 서유럽이 아메리카를 발견할 수 있었던 지리적인 환경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문명은 어떤 시점에 이르면 혁신 없이는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여건이 이뤄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 혁신이 정체되었던 동양을 붕괴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결국 서양을 우위로 만들었다. 이러한 우위는 19세기 중반부터 스포츠를 만들어내 전세계를 지배하는 서양중심의 스포츠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서구 스포츠는 동양 스포츠를 지배했고, 20세기초 동양의 체육활동을 변화시키며 잠식했다. 그리고 여기에 잠식된 스포츠관은 서구스포츠의 우월주의를 팽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도 동양스포츠인 무예는 서구스포츠문화를 수용하고 혁신을 통해 다시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올림픽과 세계무예마스터십을 통해 부활하고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WMC)가 국제기구들로부터 국제적 지위를 확보한데는 결코 짧은 기간에 이루어낸 성과는 아니다. 지난 20년여간 충북에서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2000년부터 많은 국가의 무예인들이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세계무술축제를 통해 세계무예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타 지자체들이 서구인들이 만든 이벤트 '유치'에 경쟁할 때, 충북은 '발굴'에 주안점을 두어 동양스포츠의 무예를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성공사례를 제쳐 놓고 몇 안되는 실패 사례의 전철을 밟게 될까 염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러한 우려는 더욱 신중하고 철저한 준비를 하게 만들었으며, '모험 없이는 이득이 없다'는 서양의 속담도 관계자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세계의 문명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시련에 맞서 적응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룩된 것들이다. 황하문명이 그랬고, 로마 역시 자갈밭과 역병이 들끓는 황야에서 제국을 만들어냈다. 토인비(1889-1975)는 '역사와 문명(Civilization)은 환경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응전이 낳은 산물'이라 했다. 문명이 발생할 때는 '창조적 소수자'가 나타났다. 창조적 소수자들은 응전의 방식을 찾아내고 그것을 한 집단에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에 의해 기존 잘못된 인습이나 가치관은 깨어지고 과거와는 또 다른 사회가 발생된다. 이러한 움직임이 결국은 변모된 사회의 문명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쇠퇴할 때는 창조력이 소멸되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대중은 그 그룹의 사람들을 추종하거나 모방하지 않게 되고, 이를 극복하려 창조적 소수자들은 힘에 의해 지배적 소수자로 전락하게 되며, 이것이 지속될 경우 문명은 해체된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체육학박사·WMC 기획경영부장

지금 서구스포츠가 걸어가고 있는 승부지상주의와 상업주의는 마치 문명이 쇠퇴해 가는 우려와 유사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여년전부터 국제스포츠학계에서는 '동·서체육사상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그 해답을 동양무예에서 찾으려 애썼다. 무예가 지닌 내면적 가치를 서구인들도 중요시 한 것이다. 지금은 WMC가 그 해답의 중심에 서 있다. 국제무예연맹들의 연합체이고 세계무예마스터십이라는 국제종합경기대회의 가치를 최근 국제스포츠기구와 국제기구들이 인정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국제스포츠계의 혁신과제가 지난 20여년간 동양의 스포츠인 무예와 청소년올림픽이었다는 점에서도 세계무예마스터십은 그들에게 충분한 명분이 되고 있다. 특히 이번 온라인 WMC컨벤션과 온라인세계무예마스터십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침체된 국제스포츠계의 모범 사례로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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