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아침과 저녁에는 제법 차가운 기운이 옷깃을 스치곤 한다. 그런가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에 나뭇잎은 연분홍에서 진한 붉은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어디 그뿐이랴 은행나무 가로수 또한 짙은 초록색에서 노오란 색으로 날마다 치장을 한다.

그도 그럴것이 들녘에 나가보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누렇게 잘 익는 벼들이 자연에게 고맙다고 겸손하게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무언의 감동을 주었건만 이제는 가을걷이를 마치고 군데 군데 둥근 볏짚만이 눈에 뜨인다.

이처럼 가을이 곱게 익어가는 데 우리는 자칫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들과의 일정한 거리두기가 행여나 사람들과의 마음까지도 거리를 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이 시려옴을 감출 수 없었다.

이처럼 삶의 메마름을 안타가워 하던 차에 며칠 전 세명대학교에서 제16회 인문주간을 맞아 김현정 교수님 사회로 코로나 시대, 인문학의 길을 통한 일상의 회복이라는 주제 하에 '시와 노래가 만나는 가을밤 휴(休) 콘서트'를 제천시립도서관 별관 의병도서관 지하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저녁 7시부터 8시 30분까지 열었다. 모처럼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맛보게 됐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점은 시를 주제로 '시낭송도 하고 시를 노래'했다는 점이다. 오프닝 기타연주로 제천노래연주단 정근옥님의 정호승 시인의 가을편지를 연주하여 관객들에게 깊어가는 가을의 의미를 돼 새기게 하였으며 이어 제천평생학습관 행복한 시낭송회 이원기님이 정윤희 시인의 의림지의 등불이 빛나는 밤을 낭송하여 지역사회인으로서의 남다른 향토애를 불러 일으킬 뿐만 아니라 밤에 맞는 의림지의 아름다움을 차분한 목소리와 격조높은 감성으로 낭송하여 제천인의 자부심을 갖게 했다. 연이어 제천노래연주단 신경아님이 김소월시인의 엄마야 누나야와 김광섭시인의 저녁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등 세편을 노래했다. 그런가하면 제천평생학습관 행복한 시낭송회 권영림님은 한인석 시인의 초가을 월악산을 낭송하여 제천을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들려주었으며 제천노래연주단 윤건희 님이 채규엽시인의 희망가를, 윤도현시인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정태준,박은옥님의 봉숭아를 노래했다. 끝으로 제천평생학습관 행복한 시낭송회 노순호님은 김동원 시인의 청풍명월의 고향이라는 시를 낭송하였고 김준희님이 퍼포먼스를 해주었다. 인상깊었던 것은 이 시속에 제천의 지방 사투리가 고스란히 시속에 녹여져 있었다는 점이다. 무릇 언어는 그 지방의 생명줄이다. 여기에 지역민의 문화가 숨쉬고 있고 삶의 애환이 젖어있기 때문이다. 제천인만이 쓰는 토속적인 사투리를 통하여 소박하면서도 투박한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 문학이란 언어를 통하여 인간적인 뿌리를 찾는 작업이며.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종합적, 전체적으로 알아내기 위한 활동이다. 이러한 문학 활동을 통해 인간의 깊이를 더 해가면서 작가 스스로를 포함한 인간 공통의 위상을 찾고 또한 자신을 확인한다.

분명 문학은 빵을 만드는 학문은 아니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인격과 양심을 충족시켜 주며 때로는 정신적 구원을 주기도 하고 삶에 찌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러기에 문학은 첫째, 우리의 정신적 삶을 고양한다. 사람은 물질만으로 살 수 없으며 정신적인 삶은 영위해 가는 존재이다. 물질적인 발달 못지않게 정신적인 성숙과 계발이 있어야 사람은 비로소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둘째, 문학은 수준 높은 소통 능력을 함양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만 사로잡혀 타인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면 타인이나 세계와 소통하지 못한 채 정신적으로 단절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셋째, 문학은 공동체의 역동성을 증진시킨다. 사람들은 저마다 추구하는 삶의 의미나 가치가 다르다.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집단간의 갈등에 따른 문제들이 넘쳐나게 마련이다. 문학은 이러한 삶의 문제를 그리는 과정에서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시와 노래가 만나는 가을밤 휴(休) 콘서트' 는 익어가는 가을밤에 더구나 코로나 시대에 있어 인문학을 통한 일상의 회복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 수고하신 관계자분들과 함께 공감을 나눈 관객에게도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되어준 가을달이 어느 날 보다 더 유난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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