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가을이 되면 결혼식장에 하객으로 갈 일이 잦아진다. 코로나19가 결혼 풍속도를 바꿔놓기는 했지만 축의금을 건네는 미풍양속만큼은 그대로다. 청첩장을 받게 되면 축의금을 얼마를 해야 할지 매번 고민하게 된다. 축의금에는 혼주·신랑·신부와의 관계가 드러나는 만큼 이만하면 결례가 되지 않겠다 싶은 액수로 축의금을 마련한다.

축의금을 떠올리면 지인 K가 생각난다. 최근 처형의 딸 결혼식이 있기 며칠 전에 큰 처제와 작은 처제가 아내에게 축의금을 얼마 할 것인지를 물어 왔다고 한다. 아내는 집안의 첫 조카 결혼임을 감안하여 냉장고라도 사주고 싶은 데 그럴 여력은 안 돼 행복하게 잘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300만원을 준비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큰 처제와 작은 처제는 축의금으로 50만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내의 축의금 액수를 알고 난 후 100만원으로 올려 줬다고 한다.

K는 아내가 처갓집에 축의금 논쟁이 불거져 곤혹을 겪었다고 했다. 처형은 큰 처남과 작은 처남에게 받은 축의금이 성에 차지 않아 서운했던지 장모님에게 아내의 축의금 액수를 들먹이며 유감을 표명했다고 한다. 처갓집의 축의금 논쟁의 발단은 처형이 동생들에게 받은 축의금을 비교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처형이 장모님에게 했던 말을 듣게 된 큰 처제와 작은 처제는 자격지심이 발현되었던지 축의금을 왜 많이 해서 분란을 일으키느냐며 아내에게 비난을 해왔다고 한다.

K의 아내는 축의금을 성심성의껏 하고도 욕을 먹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억울해하며 분노했다고 한다. 집안에서 첫 번째로 결혼하는 조카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던 따뜻한 마음을 인정받고 지지받기는커녕 지탄을 받는 기분이 들어 속상하다고도 했단다. 심지어 K의 자녀가 결혼을 할 때 처형에게 축의금을 얼마를 받을지 두고 보겠다고 했다는 큰 처제와 작은 처제의 말에 아내는 황당해했다고 한다.

K의 아내는 친정집의 조카들이 향후에 결혼을 하게 될 때 형편이 되면 첫 조카에게 했던 만큼의 축의금을 마련할 마음을 갖고 있는데 라며 큰 처제와 작은 처제의 반응에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고 한다. 아내는 축의금 논쟁을 곱씹어볼수록 자신이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처제들의 깜냥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직시하게 되었고, 처제들이 미성숙한 잣대로 심술부리는 것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쏟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아내는 처제들이 욕을 하든 말든 자신과 상관없는 일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해방감과 위안을 느꼈다고도 했단다.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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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아내의 축의금을 형제자매에게 비교하며 공개한 처형의 어른답지 못한 처신으로 아내가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며 씁쓸해했다. 축의금은 자신의 경제적인 여력을 감안하여 형편껏 축복하는 마음을 전하는 미덕이다. 축의금을 적게 했다고 기죽지 않아도 되고, 축의금을 많이 했다고 욕을 먹거나 비난받을 일은 더군다나 아니다. 축의금은 상대방과의 관계 친밀도가 반영되는 은밀한(?) 거래인만큼 공개하지 않고 자신만 내밀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다.

살다보면 K의 아내처럼 자신이 잘못한 일이 없어도 상대방의 폄훼와 지탄을 받기도 하고, 선한 마음으로 했던 행동이 모욕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세상을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보는 사람은 상대방이 아무리 잘하고 잘못한 일이 없어도 일과 관계를 부정적인 감정으로 반응하게 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헝클어트리고 고단하게 만든다. K가 헤어지면서 "축의금을 비교하는 심리는 축의금을 낸 사람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던 말이 오래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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