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난영 수필가

자연의 섭리는 위대하다.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건들바람이 행복을 싣고 달려온다. 들녘에는 가을볕을 듬뿍 받은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온갖 곡식이 영글어가는 소리가 탱글탱글하다.

엊그제 묵정밭에 들깨 묘를 심은 것 같은데 어느새 내 어깨를 뛰어넘었다. 귀여운 하얀 꽃들이 방글거리더니 씨방을 만들어 살찌운다. 조랑조랑 매달고 있는 송아리가 힘에 겨운 듯 가지가 찢어지려 한다. 팔 남매를 짊어진 어머니 어깨도 저랬지 싶어 측은지심이 든다.

심연에 묻어둔 절절한 애잔함에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바람결에 잠시 젖은 가슴을 열어 말리며 들깨밭을 휘돌아 본다. 들깨 향기가 고소해 미소가 번지면서도 여기저기서 키 자랑하듯 얼굴을 내미는 잡초가 거슬린다. 풀 한 포기 없이 농사를 짓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보름 정도 있으면 깨를 베어야 할 것 같아 참으려 해도 손톱 밑의 가시같이 신경이 쓰인다. 들깨 송아리가 다칠까 조심조심 이랑으로 들어갔다. 농약을 치지 않아 뱀이 나올까 무서운데 뿌리까지 단단히 박혀 뽑기가 힘들다. 남편은 어리대지 말고 가만있으라고 하나 편치 않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흐르는 땀을 훔치며 하늘을 보았다. 하얀 구름이 파란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박꽃과 목련이 몽실몽실 피어나고, 토끼와 거북이도 보인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어우러져 꽃도 피우고, 동물도 그려내는 모습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들깨 향기에 취하고 아름다움에 취해 하늘이 깔아 놓은 바람의 여울목에 앉았다. 청량감이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앉은 김에 쉬어간다고 새참으로 준비한 쑥개떡을 한입 베어 물었다. 시장에서 산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적당한 노동 후에 먹는 사랑과 정성이 듬뿍 들어간 쑥개떡은 참으로 꿀맛이다. 향긋한 쑥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쫀득쫀득한 행복이 입 안 가득 메운다.

오랫동안 담숙한 관계를 맺어온 L 선생님과 존경하는 문단 대선배님이신 K 선생님에게서 쑥개떡 뭉치를 받았다. 생각지 못한 선물에 가슴이 뭉클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손자들과 떡 만드는 체험을 했다. 촉감 놀이하듯 싱글벙글 고사리손이 바쁘다. 동글동글하게 새알을 만들고, 호떡 누르개로 살짝 누르니 크기가 일정하며 예쁘게 만들어졌다. 맛과 영양 만점의 우리 전통음식문화의 소중한 체험 찐덥다.

쑥개떡은 먹을 것이 귀한 시절 노깨나 보릿겨 등에 쑥을 넣고 반죽하여 둥글넓적하게 아무렇게나 반대기를 지어 찐 떡을 말한다. 노깨는 굵은 체에 내린 밀가루를 다시 고운체에 내렸을 때의 찌꺼기이다. 지금 같으면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보릿겨나 밀기울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배고픈 시절, 그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어머니가 해주시던 귀하면서도 눈물 섞인 쑥개떡은 행복이고 웃음이었지 싶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자애롭고 따듯한 마음씨에 솜씨 맵시 말씨까지 아름다운 분들 덕분에 기억 저편 어린 시절 그리움을 해소했다. 기품 있고 넉넉한 인자함이 돋보이는 두 분의 다함없는 사랑에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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