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마을신문 기자들의 '세상 엿보기'
박정현 기민기자 (남제천 봉화재 사람들)

마을맛 투어 이모저모
마을맛 투어 이모저모

이장님 댁 마당에는 멍석이 깔리고 하얀 광목 차양이 높게 쳐졌다. 헛간 가마솥에서는 명주실로 동여맨 돼지수육이 먹음직스럽게 삶아지고 있었고 수돗가 옆 평상에서는 마을 아낙들이 수수부끄미를 부쳐내느라 분주 했다. 이윽고 멍석에 둘러앉은 사람들 앞으로 개다리소반 가득 정갈한 한상차림이 돌려졌다. 마치 사극에서 나오는 어느 양반 댁 잔치마당의 한 장면이 떠 올랐다. 태평소 가락이 뽑아져 나오고 농악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가을이 무르익은 10월 한 날 제천시 수산면 수산1리 붉으실마을에서는 1박2일 코스로 제천시가 지원하고 토속음식연구가 하미현씨의 입말음식팀과 마을여행사 '마을너머'팀이 함께 기획한 '마을맛여행 전문가 팸투어'가 진행됐다. '팸투어'는 여행상품등을 홍보하기 위해 그 분야의 전문가나 관련업체 등을 초청해 설명회를 하고 관광, 숙박 따위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팸투어에도 여행감독, 여행작가, 여행사, 문화기획자, 여행매거진 편집장들을 초대해 이 지역 대표 작물인 수수 등을 소재로 한 음식과, 슬로시티 수산의 풍광을 배경으로 한 '마을 맛 여행'의 상품화를 가늠해 보는 자리였다. 특히 제천시에서는 '미식도시 제천, 프리미엄 미식여행'을 기치로 제천의 자연환경과 향토적인 마을음식들을 테마로 한 관광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했다.

마을맛여행의 컨셉은 상업화 된 맛집이나 숙박시설이 아닌 마을 안에서 마을사람들이 재배하고 생산한 그 마을 고유의 식재료로 마을의 솜씨 좋은 주부들이 요리사가 되고 마을의 공터가 음식점이 되며 마을 민가 빈방들이 숙소가 되어 손님들을 받는 마을체험 여행이다.

이날 손님을 맞이한 붉으실마을은 이 지역 즐비한 관광지와 달리 음식점은 고사하고 그 흔한 펜션이나 숙박업소 하나 없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앞 뒤 비탈진 땅이 9부 능선까지 밭으로 개간된 걸 보면 그렇게 까지 농사일에 매달렸을 마을사람들의 피땀에 숙연한 마음까지 드는 곳이다. 가을이 되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밭들은 수수, 고추, 사과, 오미자, 대추 등 각종 작물들이 무르익어 온통 붉게 빛난다. 왜 이 마을을 붉으실이라 부르게 됐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다.

1박2일 마을맛여행의 프로그램은 소박하지만 특별하고 수수하지만 알차게 짜여졌다.

첫날 오전은 마을 근처 청풍호전망대 트레킹과 근처 백봉산마루 주막에서 산초두부와 주막음식을 시식하고 오후에는 붉으실마을 수수밭에서 수수체험의 시간을 가졌다. 수수농사 이야기, 수수종류, 수수음식 등을 설명 듣고 수수풀떼기죽, 수수러스크등을 시음했다.

저녁은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붉으실마을 한상 소반 다이닝'. 붉으실 이장님 댁 마당에서 수수막걸리, 수수와 호랑이콩밥, 더덕김치, 버섯과 박볶음, 시래기새뱅이국, 명주실돼지고기수육+산초간장으로 꾸려진 한상 소반으로 더 없이 행복한 한 끼 식사가 됐다.

마당에 어둠이 내리고 차양 아래 전등불에 의지해 멍석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잠자리는 마을 민가에서 해결했다. 다음날 아침 일정은 붉으실 사과밭 체험이었다. 붉으실의 비탈밭들 꼭대기에 위치한 사과밭을 아침산책 삼아 걸어서 올랐다. 이날따라 운무가 가득한 사과밭은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 놓은 듯 비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침식사는 수수와플, 사과콤푸차, 사과조청의 사과밭 브런치였다. 밭주인의 친환경 농법을 통한 사과농사의 애환을 듣는 시간도 가졌다.

점심은 덕산면에 있는 청년 사회적기업 누리마을 빵까페를 방문하고 마을공동체 마실공간에서 총평의 시간을 갖고 마무리 했다.

붉으실마을 한상 소반 다이닝
붉으실마을 한상 소반 다이닝

오늘 팸투어는 농촌체험의 범주를 넘어 마을 안에 사람들의 삶과 문화, 음식의 가치까지 음미 할 수 있는 최고의 프로그램이었음을 확인 해 주었다. 참가자중 한 사람인 여행감독 고재열씨는 그의 블로그에서 '마을맛여행'을 '느슨한 귀촌공동체를 경험하는 느린 마을 여행'으로 기획 해보고 싶다며 '농촌 미식 체험 여행을 만들어 낼 수있는 마을공동체의 연대가 더 눈에 띄었다'고 하였으며 제천시 미식마케팅팀장 이정희씨는 '프로그램 하나하나 감동 받고 힐링 되는 시간이었다'며 좋아 했다.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것들도 잘만 포장하면 이렇게 훌륭한 문화상품으로 탈바꿈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행사였다. 이 행사가 단발성으로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인 상품으로 개발되어 농가소득증대와 마을경제 활성화에 이바지 할 수 있기를 기대 해 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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