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종진 충주문인협회장

애초에 어느 해풍이 짭쪼름한 해안 아슬한 절벽에 각혈하듯 붉게 피어났어야 했을 동백이었다.

지난해 평소 가까이 지내던 후배가 칠순이라며 보내준 동백나무 화분이 하나 있었다.

처음에는 꽃 봉오리가 어찌나 탐스럽게 많이 맺혀있고 초록의 싱그런 잎새가 반질거리며 윤이 나던지 출근해서 바라보는 즐거움이 제법 쏠쏠하였다.

며칠 출장이라도 갔다 오면 물 주는 일이며 잎새를 닦아주는 일에 한번도 소홀함 없이 지냈지만 언제부터인가 수형을 바로잡기 위해 나무 전체를 칭칭 감아논 철사 가닥이 왠지 영 마음에 걸렸다.

성장을 위한 영양제도 가끔씩 주고 비가 올적마다 화분을 내놨다

들여놓기를 반복 했음에도 처음 사무실에 와 꽃을 피운 이후로 한번도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꽃잎이 엷게 퇴색된 채 시나브로 져버리는 안타까움만 안겨줬다.

마치 장마 지난 울안 땡감 꼭지 떨어지듯 꽃망울이 통째로 떨어지는 데야 대책이 없었다.

나름대로 그 원인을 해결할 요량으로 급기야 며칠 전 큰맘 먹고 나무를 감고 있는 철사를 모두 풀어내는데 무려 한 시간이나 보냈다.

그리고 사무실에 더 이상 둘 것이 아니라 아예 집으로 가져가 화단에 심어 보기로 작정했다.

아무리 조심해서 철사 매듭을 찬찬이 풀어내도 잔가지가 몇 군데나 부러지고 말았다.

연록의 잎새가 마악 돋아나는데 오히려 된서리를 맞게 해준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가만히 나무를 보니 허위허위 달려온 내 삶의 실체가 어렴풋이 투영되어지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

얼핏 잊고 있었던 ' 김용택 시인의 '선운사 동백꽃'이란 시가 화들짝 떠올라 읇조려 보았다.

'여자에게 버림 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초등학고 첫 졸업장을 타 들고 알지도 못할 뿌듯함에 점심도 거른 채 십 여리 고갯길을 단숨에 뛰어넘던 그날 이후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동분서주하며 외곬 인생을 살아왔던가? 어디 그뿐이랴.수많은 '증'과'장'을 타 내기 위하여 부질없고 무모하게도 내 몸에 덕지덕지 철사가닥을 칭칭 감아대듯 살아온 세월은 또 어떻고….

그래도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 앞에 맞닥뜨릴 때면 으레 동백나무처럼 의연히 홀로 서서 꽃 피우기를 다짐하곤 했던 젊은 날의 그 치기같은 패기가 딴은 그립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결국 악세사리 하나 더 걸치기 위한 몸짓에 불과했을 따름인데 말이다.

첫 정월 귓불에 시린 바람을 옴팍 떠 앉고서 부모님 산소가 있는 고향 오솔길을 걸으며 '올핸 버리자,비우자'되뇌던 다짐도 막상 달라진 게 무엇이 있었단 말인가? 쓴웃음만 나온다.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별로 가진 것 없는 일상 속에 그 무엇 하나 푸달지게 이웃에게 나눠 줄게 있으랴만 둘을 주고 하나를 받지 못하더라도 서운해 하지말자.

아니 그 하나마저도 받지 못한들 또 어떠랴. 다만 그 둘의 의미가 왜곡되어지지만 않는다면. 하여,이제 그 철사가닥을 끊어내듯 나도 나를 칭칭 동여매고 있는 삶의 중압감을 훌훌 벗어버리면 다시 새 땅에 활착하여 생기를 되찾을 동백나무처럼 싱그러워질 수 있을지 당최 모를 일이다. 달랑 한 장 남은 섣달 달력의 부피를 보니 오슬오슬 더 춥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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