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올 가을은 다른 해보다 좀 짧아진 것 같다. 꼭 가을 한 부분을 싹둑, 도둑맞은 느낌이랄까. 갑자기 찾아온 추위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든다. 한밤중 쌀쌀함에 서둘러 밖에 있던 화분을 실내로 들여다 놓았다.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 춥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말하자면 보일러가 없다. 아이들 어렸을 적 학습지 선생님이 방문을 할 때면 미안해 죽는 줄 알았다.

우리는 익숙하지만 처음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은 추위 때문에 어쩔 줄 모른다. 반대로 우리 집 식구들은 다른 집을 방문하면 높은 온도에 얼굴이 벌개 진다. 꼭 호빵맨 같다. 빨간 내복만 입고 있다면 예전 풍경 속으로 여행을 떠난 것 같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난방기구로 겨울나기를 하지만 집에서도 외투를 입고 있을 정도다. 꼭 외출 직전 모습처럼. 우리도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깔깔 웃기도 한다. 그러다 아버지가 아프신 후 작은 공간을 방으로 꾸며 그 방만 보일러가 돌아간다.

난 그 방에 들어가면 사우나에 간 것처럼 순간 숨이 턱 막힌다. 온도를 낮추었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집은 여름엔 유난히 덥고 겨울은 춥다. 아들의 친구들이 놀러 와서는 극기 훈련장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한술 더 떠서 야외 캠핑을 나왔다 생각하라고 한다.

그러니 화분들의 겨울나기는 더 힘들다. 우리 집에는 작은 화분이 있다. 겨울에는 그럭저럭 실내에 있다가 봄부터 가을까지는 모두 밖에 꺼내 놓는다. 그럼 더 싱싱하고 줄기도 통통하게 살이 찐다. 색깔 또한 진해져서 더 건강해 보인다.

특별히 화분을 사는 일은 별로 없다. 이래저래 선물을 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화초를 잘 돌보지 못해 죽는 일이 많아 받아도 걱정이 앞서곤 한다. 그중 제일 반가운 것은 선인장 화분이랑 다육이다. 특별히 신경을 안 써도 잘 살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 집으로 온 화분은 나름 물을 잘 주며 키운다. 비만 잘 맞아도 잘 크는 것 같아, 비가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비 오는 날에는 더 밖으로 화분을 내다 놓는다. 그럼 신기하게도 비가 멈추면 갓 세수한 것처럼 잎사귀들이 반짝이곤 한다.

몇 년 전 그나마 보일러 있는 방이 생겼지만 작다 보니 화분들은 꿈도 못 꾼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작년 늦가을 아내는 큰맘 먹고 조립식 가정용 비닐하우스를 구입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마침 큰 화분들이 많았고 줄줄이 잎이 늘어지는 화분도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추위가 몰려오려는 신호가 있던 저녁, 우리 가족은 테라스에 설치한 비닐하우스에 화분을 몽땅 가져다 놓았다. 아주 작은 화분은 그나마 보일러가 있는 방에 놓으려다 그래도 그 비닐하우스가 나을 것 같아 몽땅 그곳으로 들여놓았다.

신문지도 깔고 그 위에 옹기종기 화분을 놓았다. 그날 밤 아주 추웠지만 편한 마음에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테라스에 화분을 보러 갔다. 맙소사! 화초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물도 더 주고 집에 있는 스티로폼을 깔아 주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시간이 지난 후 집에 있던 화초들이 몽땅 죽었다. 너무 미안했다. 차라리 몇 개라도 다른 곳에 놓았더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아내한테 죄다 모아 놓고 한 방에 죽였다고 투덜투덜 거렸다. 공포의 비닐하우스가 되고 만 것이다. 그 이후 다시 생긴 작은 화초 화분 몇 개를 실내로 들여다 놓고 잘 돌보고 있다.

부디 올 겨울을 잘 지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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