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름대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매우 공감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을 이름은 어른이 되면서 어느덧 그 사람의 인생과 맞닿아 군인으로 소방관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다행스럽기도 하였다. 사회복지사에게 좋은 이름은 무엇일까.

사회복지사로서 불리는 이름은 사실 개인의 이름보다 이루어낸 성과와 관련이 있다.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대상자들의 삶이나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서비스를 기획하게 되고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름, 제목을 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제목은 조금 길어도 괜찮으니 친절하게 지어져야 한다.

사회복지서비스의 이름에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싶지만, 프로그램 제목과 사업명의 변화는 사회복지 패러다임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기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이름이 어색해서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건 아니지만, 최근의 움직임은 사회복지가 사회적 약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특정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 예로, 예전엔 아이들을 돌보던 시설을 '고아원'이라고 했지만 이젠 말 그대로 '고아(孤兒)'가 거의 없어 아동복지시설로 불린다. 아이들이 이용하는 시설도 지역아동센터가 대표적인데 이름에 특정 계층이 담기지 않았음에도 이미 사업 시행 초기에 '저소득' 아동들만 이용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벗어나기가 어렵다. 지금은 이용하고 싶은 지역의 아동을 모두 수용할 수 있지만 이미 낙인이 되어 버려 이미지를 벗어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요즘엔 '다함께 돌봄'센터가 설립되고 있다. 세대 수에 상관없이 신축 공동주택 단지에서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생 수를 추정하여 설립되는데 말 그대로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되고 있다. 아이들을 맡길 곳이 필요했던 부모들이 믿을 수 있는 시설이 동네마다 들어설 수 있게 되면서 지역사회가 안전하게 아이들을 돌보게 된 것이다. '아이들을 다함께 돌보는 지역사회' 정말 꿈같은 말이다.

좋은 사례는 또 있다.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이 중 학습이나 사회 적응이 조금 더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장애아동과 비장애 아동의 경계에 있는 아동이 주 대상이라는 점에서 처음엔 '경계선' 아동 지원 사업으로 알려지다가 '느린 학습자 지원'으로 불렸고 지금은 '나답게 크는 아이' 사업으로 변했다. 사업명이 변경된 것을 알았을 때 너무 반가웠다. 학습이 좀 느리고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도 그 아이는 그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아이들을 경계선으로 분류하고 '정상'의 범주에 넣어 주지 않았다. 아이들을 독립적인 존재로 본다는 것은 아이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데 있다. 이는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김현진 교수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름이 마음에 든다고 사업이 잘 구성된 건 아닐 수 있지만 이름만으로도 시작이 나쁘지 않다. 지역사회가 다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는 사회, 조금 느린 아이들이 조바심 내지 않고, 비교당하지 않고 오롯이 그 존재만으로 존중받아 '나답게' 크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이들을 부모의 소득 기준이나 장애 유무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더이상 사회복지 대상자를 빈곤한, 아픈, 문제 있는 사람들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설사 그 환경에 처한 사람이라도 사회가 그것을 먼저 들춰내 구분할 필요도 없다.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으로, 아픈 아이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그저 함께 노는 곳으로 인식해주길 바란다. 어른들이 불러주는 이름이 아이들의 미래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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