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살면서 뭔가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쩌다 훈민정음에 꽂혀 수십 권의 책을 사고, 급기야는 책까지 써서 세상에 냈으니 이는 배움의 절정이다. 한글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다는 말인가. 이 물음에 몰입하는 순간, 궁금증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지금도 틈만 나면 이것저것 서적과 기록을 뒤지고 있는데, 최근에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졸저 '훈민정음 비밀코드와 신미대사'를 쓰면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스쳐버렸다. 그때는 신미라는 인물에 더 관심이 가서 그랬나 보다.

세종이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121일간이나 머물렀던 초정행궁! 아니, 임금이 정궁을 떠나 행궁에 와서 그렇게 오래 머물렀다? 한양에서 오고 가는 날짜를 빼면 117일 정도 기거한 셈인데,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행궁이란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 별장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임금이 나들이할 때 기거하기 위해 지은 임시 거처다. 그런 행궁에서 그토록 오래 머물렀다는 것은 눈여겨봐야 한다.

잘 알고 있듯이, 세종이 안질 치료를 위해 초정에 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실록에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바로 한글 작업이 초정행궁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 이것이 조선왕조실록 1444년, 세종 26년 2월 20일, 훈민정음 반대 상소에 나온다. 이른바 그 유명한 갑자상소다.

최만리 등은 세종이 1443년 한글 창제 사실을 발표하자 발끈하여 6개 항에 걸친 긴 상소를 올린다. 그중 다섯 번째 항목에서 이런 엄청난 말을 한다. "… 또한 이번 청주 초수리에 거동하시는 데도(중략)… 언문 같은 것은 국가의 급하고 부득이하게 기한에 미쳐야 할 일도 아니온데, 어찌 이것만은 행재에서 급급하게 하시어 성궁을 조섭하시는 때에 번거롭게 하시나이까."

초수리는 지금의 초정을 말하고, 언문은 훈민정음의 다른 이름이고, 행재는 초정행궁을 뜻한다. 또 급급이란 말은, 앞에 '기한에 미쳐야 할 일도 아니온데'와 연결되어 있다. 쉽게 말해 성궁, 즉 임금님의 몸도 좋지 않으신데, 어찌 이 언문만은 서둘러서 행궁까지 가서 일을 마치려고 하느냐고 따진 것이다. 집현전 부제학이라는 사람이 괘씸하기 짝이 없다. 거기다가 언문을 별것 아닌 것으로 보고 있으니.

나는 여기서 놀라운 함의를 발견했다. 훈민정음은 기록상 세종이 만든 것이 맞는데 혼자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 전후 과정이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디서 만들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최만리의 상소를 통해서 한글 작업이 초정에서 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초정은 현시점에서 한글 작업을 어디서 했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세종 혼자서 한글 창제 작업을 비밀리에 했다면 과연 어디서 했을까. 그건 상상에 맡길 일이지만, 여기 초정은 기록에 버젓이 나와 있으니 보통 장소가 아니다. 한글의 성지로 보아야 마땅하다.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초정행궁이 달리 보인다. 분명, 세종은 안질만 치료하기 위해 초정에 온 것이 아니다. 초수는 충남 목천과 전의에서도 나왔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 초정에 왔을까. 그것도 두 차례나. 나는 그 중심에 한글 작업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이건 놀라운 사실이다. 여기서 한글을 시험하고 정교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그리 오랫동안 머물렀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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