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어디로 가는가
다들 어디로 가는가
  • 중부매일
  • 승인 2021.11.2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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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모두 사라져버렸다. 밤낮 울어대던 매미들의 그악스런 소리는 오래 전부터 들리지 않는다. 내년 여름 다시 그 소리를 들으면 또 힘들다 할 테지만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지금은 그립고 듣고 싶다. 한동안 실솔실솔 울어대던 귀뚜라미 소리도 사라졌다. 짧은 세월 온힘 다해 울더니 귀 기울여도 더는 들을 수 없다.

내 어렸을 때에 오종(午鐘)부는 소리가 들렸었다. 종이라기보다 사이렌이었는데 낮 열두시면 꽤 오랫동안 울렸다. 그뿐인가. 저녁 대여섯 시에는 국기 하강식이 전국적으로 행해져 모두가 반강제적으로 국기에 예의를 표해야 했었다. 날이 샐 즈음 들려오던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하던 노래도 어지간히 동네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졌었다.

한 때는 민방공훈련을 한다고 끝까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경보들이 매달 전 국민 생활을 통제하기도 했다. 정해진 날에 경보가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대피를 했다. 학생들은 수업을 빼는 공식 행사여서 정해진 곳에 몰려가 방송을 듣다 돌아와야 했다. 그런 일들이 어떤 사고방식과 목적으로 행해졌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아리송하다. 긴 세월 군림했던 통치자가 죽고 나서인지, 문민정부 수립 후부턴지 하나 둘 사라지더니 이제는 어떤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 자신의 시간이 있는가 보다. 영원할 것 같던 것들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다.

온 국민이 하나였던 '2002 한일 월드컵'이 벌써 20년 전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기억들이 생생하지만 50년도 더 지났다.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면 남들만큼 살아도 남은 날들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날들이 좋은 일들로만 채워진다고 할 수도 없다. 해결해야 할 삶의 과제는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다가올 게고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으리라.

매미소리 사라진 건 뜨겁던 여름이 가버린 게고 귀뚜라미가 더 이상 울지 않는 건 가을이 깊어간다는 뜻이다. 알록달록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이제는 지고 있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고 잎들이 흙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험한 세월에도 새 생명은 태어나고, 또 생을 다한 이들은 하늘로 돌아간다. 내 앞에도 많은 분들이 계셨었는데 이제 듬성듬성해 허전하다. 명절에 보면 내 서열이 꽤나 올라가 있다.

가덕으로 이어진 코스모스 길을 가보았더니 벌써 추레한 모습이 드러나고 냇가를 따라 무성했던 갈대도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잎들은 지기 전 단풍이 가장 황홀하고 태양은 일몰전 붉은 놀이 장엄하다. 그들이 벌이는 이같은 마지막 축제에 많은 이들이 단풍을 찾고 일몰의 장관에 숙연해한다. 어느 날 돌아보니 매미소리 그치고 귀뚜라미 노래 사라졌듯이 하늘에서 내 이름 부르는 날 홀연히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들처럼 소리 들리지 않고 자취 보이지 않을 때에 날 그리워 할 이 얼마나 있으려나?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햇볕 따스하고 전망 좋은 오목한 곳에 볼록이 자리한 유택들을 보며 한때 당당했을 이들이 흙속에 누워 찾아드는 하늘의 새들과 땅의 벌레들을 벗하며 때를 따라 피고 지는 꽃들과 함께 이 땅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본다. 바람도 없는 날,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은행잎들이 땅으로의 마지막 금빛 비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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