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김장하려고 무를 뽑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 씨를 뿌릴 때부터 얻고 싶은 것은 무가 아니라 무청이었다. 그래서 자라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싹이 나오면 마냥 신기했고 잘 자라주는 것이 고마워서 화초 보듯 즐겼다. 내 행동을 옆 밭에서 농사짓는 할머니는 무척 못마땅해하셨다. 만나면 쓴소리다. 씨를 뿌릴 때부터 성의가 없어 보이더니 한군데서 여러 싹이 나왔는데도 뽑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다. 단호하게 하나만 남겨놓고 뽑아줘야 간격이 촘촘하지 않고 무가 제대로 자란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쳐다만 보지 말고 빨리 뽑아내라고 재촉하셨다. 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러실까, 이해는 되지만 내 마음과 같지 않은 할머니와 거리가 나도 조금은 불편했다.

얼마 후 옆 밭에 일이 생겼다. 무 잎에 벌레가 갉아 먹은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데도 약을 뿌리지 못했다. 내 손으로 건강한 채소를 얻으리라는 신념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속상했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진딧물까지 생긴 것이다. 진딧물과 벌레는 옆 밭으로 옮겨졌고 피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뿌리면서 우리 밭까지 뿌렸다. 얼마 남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같은 곳에서 같은 농작물을 키우다 보니 내 마음을 모르는 상대는 무책임과 게으름으로 보고 있음을 알았다.

농약은 해충만 죽이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달팽이도 살고 무잎 사이에 무당벌레도 보인다. 짝짓기하는 방아깨비도 있고 거미도 산다. 이슬에 젖은 날개를 말리는 잠자리며, 개미와 작은 곤충들의 움직임도 보인다. 곤충들은 무밭이 집이고 놀이터고 휴식의 장소일지도 모른다. 서로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는 터에 지독한 냄새가 나는 약으로 덮어놓았으니 달아나는 곤충의 아우성이 들리는듯하여 한동안 무밭에 가지 않았다.

나에게 가을 무밭은 힐링의 장소였다. 내 발소리에 놀란 곤충들이 달아날까 봐 조심스러워지는 걸음만큼 마음도 가벼웠다. 무 잎의 까슬한 촉감, 채소 풋 냄새만 맡아도 행복했다. 그런데 무청을 쓰려고 무를 뽑는 순간 행복했던 지난 시간이 후회됐다. 무가 작은 만큼 무청도 실하지 않아 시래기로 말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친환경으로 농작물을 키우는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애정이 아니라,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란 것을 가을걷이하면서 깨달았다. 애정이란 감성의 테두리 안에 마음을 가둬놓고 단호하지 못했던 일들이 무밭뿐일까. 나 자신으로부터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사회의 안전 불감증과 이슈가 되는 사건들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단호하지 못했던 순간이 있다. 후회하면서도 반복되는 습관 단호함,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무 농사를 짓고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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