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別遣御史 활동' 발표
37세 때 별견어사 파견 유일… 이후엔 당상관직 수행
해학 섞은 말로 친근감… 행군 군병들 발도 주물러 줘
영조, 철저한 비리 수령 감찰·위민적 어사로 큰 신뢰

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송문용 

[중부매일 송문용 기자]천안 은석산에 묻힌 박문수(1691~1756)는 암행어사 설화 주인공으로 통하지만 실제 어사 경력에 대해선 혼선을 빚고 있다. 최근 승정원일기, 연보(年譜) 등을 통해 역사상 박문수의 어사 이력과 참모습을 밝힌 논문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조한필 원장은 논문 '박문수의 어사 이력과 별견어사 활동'을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지방사와 지방문화' 24-2호(역사문화학회 11월 30일 발행)에 발표했다. 조 원장은 논문에서 "박문수는 호서어사, 영남감진어사 등 여러 번에 걸쳐 어사로 파견됐다고 항간에 알려졌지만, 사실은 1727년 37세 때 영남별견어사 파견이 유일하다"고 밝혔다.

박문수는 별견어사 파견 직후인 1728년 3월 이인좌의 난 진압으로 큰 공을 세워, 당상관(堂上官) 영남관찰사로 파격적인 승진을 했다. 조 원장에 따르면 이후 박문수의 지방 파견은 당하관 어사와는 성격이 다른 고위직 업무 수행이었다. 일례로 1731년 비변사 구관당상으로 영남 재해 진휼 감독한 것을 일반어사 역할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조 원장은 "박문수가 임명된 별견어사는 영조대 특별한 어사로 진휼을 감독하는 감진어사 기능과 함께 수령들 비리를 적발하는 암행어사 임무를 수행했다"고 강조했다. 영조는 별견어사 임명에는 '각별한 뜻'이 있다면서 수시로 암행해 각 마을을 숙연케 하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박문수는 별견어사 파견 때 울산부사, 영주군수, 경산현감 등 11명의 파직을 이끌었다. 특히 임금 측근 고위관리가 "나랏일에 보탬이 된다"고 추켜세운 양산군수까지 적발했다. 그는 비리관리에 대해선 엄격한 처리를 주장했다. 이미 파직돼 유배간 청도군수는 다시 붙잡아 올렸다. "어사가 수령의 불법을 아룄는데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어사를 파견한 뜻이 어디에 있겠느냐"며 박문수는 철저한 조사를 위해 의금부 압송을 요구했다.

영조는 이런 박문수를 평생토록 신임했다. 박문수는 임금에게 아뢰는 목소리가 크고, 다소 불경스런 행동으로 자주 지적을 받았다. 그때마다 영조는 "충심에서 나온 행동" 혹은 "순박하고 바른 성품"이라면서 문제 삼지 않았다.

조 원장은 "영조는 되레 박문수의 순박함이 왕을 대신해 민심을 다독이는 데 적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731년 영조는 박문수가 예전 군병을 감동시킨 일을 떠올리며, 백성들 위로를 당부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민간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많이 알고, 말도 해학을 섞어 백성들이 좋아한다"면서 "직접 행군 군병들 발도 주물러 줘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고 경험담을 소개했다.

조 원장은 "박문수의 철저한 비리 감찰, 백성과의 교감을 통한 위민적 어사 활동이 그를 암행어사의 상징으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이 논문은 지난 4월 발표한 '조선 영조대 별견어사의 성격'(역사와 담론 98집)의 후속편이다.

천안시는 현재 박문수 어사 활동을 토대로 충청유교문화권 광역관광개발사업인 '암행어사 출두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천안에는 은석산 묘소와 고령박씨 문중이 기탁·기증한 초상화(보물 1189호) 및 고문서 자료 등 박문수 관련 유적·유물이 있다. 송문용/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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