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여점 뼈 깎는 노력 결정체… 인고의 망치질은 계속"

지난달 26일 2021년 충청북도 석공예 명장으로 선정된 신현종씨가 수상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2021년 충청북도 석공예 명장으로 선정된 신현종씨가 수상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부매일 정봉길 기자〕"기술만 있다고 해서 명장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현종 대표 (49·제천시 명지동 아트스톤).

그는 올해 충북도 석공예 명장으로 선정됐다.

'명장'은 기술인의 땀과 노력의 결정체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정과 망치'로 석공의 길에 들어선 신 대표.

그가 30년동안 걸어온 석공예의 아픔과 험난한 발자취를 재조명했다. /편집자


신 대표는 제천시 금성면 위림리에서 9남매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제천시 금성초교와 제천중학교를 거친 그는 1990년 산업고(옛 광산공고.석재과)에 입학한다.

이렇게 그는 석공의 길을 걷게 된다.

신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기도 이천에 있는 석예석재에 입사해 석공예 명장으로 선정된 오금석씨 지도 아래 본격적인 기술을 연마하게 된다.

하지만 이 길이 그리 녹녹치 만은 않았다.

망치를 들고 돌을 내리치다 보면 파편이 튀어 얼굴은 물론 손이 찢어지는 게 다반사였다.

또한 파편이 눈에 들어갈 때는 1년에 몇번씩 병원을 찾아야만 했다.

특히 "한 번 깎아낸 돌은 다시 붙일 수 없다"는 스승의 지침은 신 대표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1mm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작업은 신 대표에게는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기술을 전수받은 신 대표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조형물을 깎았다.

대구 중앙공원 조형물·지리산 공비토벌 기념비·안성 만세 기념비·수유리4.19 기념탑·마이산 입구 조형물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 1997년에 만든 대구 중앙공원 조형물이다.

신 대표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첫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도 대구에 갈 일이 생기면 꼭 중앙공원을 찾아 지난 날들을 회상하곤 한다.

신 대표의 손재주는 타인이 부러워 할 만큼 탁월하다.

그는 제천지역에서 처음으로 '문화재수리기능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화재수리기능자는 훼손된 문화재를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보수하고, 원형을 보존하는 기능을 보유한 전문가를 말한다.

신 대표는 2011년 문화재청이 주관한 문화재수리기능자 '가공 석공 분야 자격 시험'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종 합격했다.

면접과 실기로 7시간 동안 치러진 이 시험은 오로지 정과 망치 등 수공구로만 작업해야 한다.

한마디로 작업자의 숙련도와 정확도가 필요한 시험이라 할 수 있다.

신 대표는 그동안 1천여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 26일 꿈에 그리던 2021년 충청북도 석공예 명장으로 선정됐다.

충북도는 명장 선정을 위해 대한민국명장회 및 전문가를 심의위원회로 구성해 까다로운 서류심사와 현장심사, 면접심사 등 3단계 심의를 거쳐 신 대표를 최종으로 선정했다.

10회의 공모전 입상 및 9회의 개인전 및 단체전을 통한 창작활동과 후학양성을 위한 기능경기대회 선수지도 등이 높은 점수를 얻은 것이다.

이외에도 신대표는 한국환경공단(이사장 박승환)이 주최한 '제6회 자원순환 정크아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가 출품한 작품은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여성의 몸을 표현한 '그린 비너스(Green Venus)'.

당시 신 대표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때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작품이라며 작품의 의미를 설명했다.

신 대표가 대한민국 정크아트 분야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크아트 공모전 최우수상, 2010환경조각대전 특선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비록 돌이라도 신 대표의 손을 거치면 마치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바뀌는 듯 하다.

"돌 하나가 4천년을 간다. 작품 하나가 우리나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가는데 아무렇게나 만들 수가 있겠냐"는 신 대표.

신현종 명장이 제작한 석재 조형물 모습.
신현종 명장이 제작한 석재 조형물 모습.

그는 작품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담아내려고 애쓴다.

한 때 국내에서는 석공들이 이름을 떨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힘든 노동에 점차 그 맥이 끊어져 결국 3D업종으로 분류됐다.

아무도 가지 않는 석수장이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신 대표.

신현종 명장

그에게는 작은 소망이 있다.

그가 걸어온 이 길이 석공 후배들에게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한다.

신 대표는 "석공예라는 어렵고 힘든 일은 남들이 외면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나에겐 최고의 직업이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 대한민국명장과 지역무형문화재인 석장에도 도전할 계획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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