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장지문 열고 '덕지뜰'을 내다 보면 논두렁 태우는 연기만 가득하고, 나지막한 회색 하늘가에선 아기 예수 탄생을 축복하듯이 섣달 흰눈송이가 푸슬거리며 흩날리던 유난히 춥고 길기만 했을 60년대 말 어느 겨울, 지금은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기억의 저편 할머님이 희미하게 생각납니다.

어린 손주 터진 목양말을 기우신 후 멀건 수제비국에 찐 고구마 두어개로 허기짐을 달래시고 총총걸음으로 십릿길 예배당을 향하시던 뒷모습이 꿈결인듯 아련합니다. 예배당 가실 땐 평소 즐겨 읽던 시편 23장을 작은 목소리로 암송하며 걷는 것이 받은 은혜라 하셨지요. 고난의 세월, 인고의 잔주름이 얼굴을 메우시고 머리는 백발이 되셨지만 속 마음이 그분의 품성을 닮으셨기에 항시 넉넉하셨고 어둔 길도 발걸음이 그리 가벼우셨는지요?

그 시절 어디 난방이 제대로 된 건물이 있었겠습니까만 그저 주일이 되면 시린 손발을 부비면서도 만남 자체가 반갑고 구수하게 들려주는 구약성경 이야기가 마냥 재미있기만 했지요. 머리가 다 벗겨지셔서 몇 살 더 위로 보이셨던 60 중반의 목사님, 마른 버짐이 허옇고 기계충이 덕지덕지한 가난하고 꼬질꼬질했던 우리의 손을 꼬옥 잡아주시며 "어이~ 우리 천사들" 하시던 그 음성이 반 세기도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가슴을 후려치는 건 어인 일입니까? 자못 그 따스한 손길이 이 계절에 그립기만 합니다.

한참을 걸어야 초가 몇 채가 듬성듬성했던 산자락 동네에도 기쁨의 소식이 전해왔지요. 성탄절 새벽, 큰 형과 단발머리 누나들이 지등을 바투잡고 앞장서면 조무라기 패들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온 동네 개들이 그악스레 짖어대도 거칠 것 없이 불러제켰지요. 키만한 자루속에는 튀밥, 연필 한 다스 그밖에 공책 몇 권 그리고 조합장 할아버지께서 주신 사과 몇 알과 저금통이 전부였지만 왜 그리 신이났던지요. 이제 어릴적 그 기쁨을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정말로 풍족해 차고 넘침 속에서도 늘 허기져 있는 우리들의 영혼이 오늘따라 왜이리 초라해 보이는지요.

새해에는 꼭 사람 꼴의 값을 하며 살아 갈 것을 다짐해봅니다. 그래서 때묻지 않았던 동심의 그 시절 그 첫사랑, 첫 신앙을 새롭게 간직한 채 푼더분하게 말입니다. 하여 성탄을 앞두고 12월 시낭송회 모임 날에는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를 낭송해 볼 작정입니다.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 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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