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역시 자연 속에서 자유롭다. 머릿속에 담고 온 골치 아픈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망각이 된 듯 바다와 해국에 취하여 감탄하고 있다. 더불어 번뜩이는 영감에 글감도 챙긴다. 간구한 글감과 가슴을 흔드는 대상을 부르지 않아도 주어진다. 일상을 벗어나서 마음에 흡족한 자유를 즐기는 상태, 바로 유유자적(悠悠自適)이다. 몸 안에 잔잔히 일어나는 흥취감은 자신을 자유로이 놓아두고 있을 때 가능하다.

눈앞에 보이는 '놀멍 쉬멍', 입으로 읊조리기만 해도 좋다. 문우는 주말에 '불멍'하러 시골로 들어간단다. 불멍은 '불장난'에 가깝다. 모닥불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아무 생각 없이 불구덩이를 쑤시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나도 덩달아 '놀멍 쉬멍'하러 간다'라고 작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오래전에 계획해 놓은 여행 날짜가 코밑으로 다가와 있다. 30년 이상을 바라본 절친한 친구들. 오랜 벗들과 어울림은 순수하여 좋다. 하지만, 12월에 여행을 떠나기에 나의 여건은 분주하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열거하지 않아도 마음이 복닥거린다.

오늘만큼은 머릿속에 산재한 일을 과감히 지우려고 한다. 아니 지워야만 살 것 같은 심정이다. 벗들과 제주 나들이에 무계획으로 나선다. 매번 완벽주의자처럼 일정을 빠듯하게 잡아 계획대로 움직이는 사람. 촌각을 다투듯 시간을 노상에 흘리기를 싫어하는 성품 탓이다. 늘 긴장하여 몸과 마음이 유연하지 않고 단단하다. 이번 여행은 다르다. 벗들도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발길 닿는 대로 구경하고 먹고 머물기로 한다.

선인의 '적(適)하다'를 따라 하기다. "유유자적은 자적기적(自適基適)"이다. 우선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롭고, 마음에 드는 좋아하는 물상과 환경을 구한다. 뭇시선도, 평판도 없는 희로애락 하지 않는 상태가 '자적(自適)함이고 진인(眞人)의 참모습'이란다. 그리하여 자연을 벗으로 삼은 선인도 여럿이다. 오늘의 고사성어, 사미사우(四美四友)를 통하여 알게 된다. 중국 송나라의 소강절(1011~1077)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네 가지 아름다움과 벗이 있다고 꼽는다. 사미는 청산, 녹수, 청풍, 명월이고, 사우는 눈, 달, 바람, 꽃이다. 고산 윤선도는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벗으로 오우가를 지었지 않던가. 또한, 고려 말엽 김경지(金敬之)는 강, 산, 바람, 꽃, 눈, 달을 좋아하여 거처를 육우당(六友堂)이라 이름하였다.

이은희 수필가 
이은희 수필가 

사우, 오우, 육우는 모두 자연의 대상물이다. 자연도 좋지만, 변함없는 인간이 벗이라면 최고의 벗이 아닌가. 끝없는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적(適)하기가 쉽지 않다. 주위에 돈 많은 사람도 권세와 명예가 높은 분도 많다. 하지만, 진정한 벗이 없어 외롭게 지내는 분도 여럿이다. 앞으로 30년, 40년 남은 생애를 진정한 벗과 적(適)하면, 무엇이 부러우랴. 나의 유유자적에는 속마음을 풀어 놓아도 허물없는 벗과 문우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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