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지금의 시대는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다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브레이크에 걸려 주춤한 상태이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내의 케인즈 같은 반전들, 사회주의의 반격, 북구 복지국가, 협동조합 등으로 변주되었지만 주류는 자본주의를 이은 신자유주의임에 틀림없다.

자본주의(capitalism)의 어원은 '넌 돈(capital) 밖에 몰라'라고 놀리던 반대편의 조롱에서 연유된다. 만약 우주 외계인이 지구를 탐방하다가 돈이 주인인 별이래 한다면 우습지 않은가. 그 우스운 짓거리가 펼쳐지는 것이 지금의 지구이며 현대 문명이며 우리가 사는 일상이다.

자본주의는 아담 스미스에게 크게 빚졌다. 그런데 과연 그것만일까?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등의 선배 사상가들이 없었다면 '보이지 않는 손' 운운하는 아담 스미스의 사유가 존재 가능할까? 데카르트만 하더라도 그는 과거로부터 아무런 도움 없이 혜성같이 나타났을까? 그에게 영향을 끼친 선배 사상가들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멀리 로고스 즉 이성의 철학자 플라톤이 없었다면 기반이 취약해진다.

자본주의는 이처럼 대강 헤아리더라도 많은 사상가들이 바탕을 깐 상태에서 문명사적으로는 피렌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피렌체는 르네쌍스를 연 도시이다.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메디치가 등장한다. 메디치라는 자본가가 르네쌍스의 동력을 제공했기에 자본가가 세상과 문명을 이끌어왔다, 이렇게 단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가 없었다면 메디치 혼자서 문화, 예술을 이끌 수 있는가? 본체가 없는데 조력 내지 서비스가 르네상스를 주도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메디치를 무시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모든 것은 상호작용이다. 쿼크(소립자)니 우주 자체가 상호작용인데 그 사이에 있는 문명, 사회 그것들이 단지 어느 한쪽의 지휘로 만들어지는가? 우스운 이야기이다.

데카르트 얘기를 좀더 하자면 그는 '코기토 에르고 숨(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뿐 아니라 수학에도 능해 좌표를 만들었다. 라이프니츠는 디지털 컴퓨터의 기반이 되는 이진법 수 체제를 다듬었다. 현대 문명은 과학 문명이기도 하다. 과학의 기반이 수학인 바 현대 과학 문명의 최고 수혜자들인 기업가들이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카르트, 라이프니츠에게 답례는커녕 그들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할까 의심스럽다.

인류사를 깊게 보아 쇼베 동굴이나 알타미라 벽화에 눈을 돌려보자. 각기 3만년 전, 1만5천년 전의 작품들이 인류를 얼마나 풍부하게 만들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부에 도움을 주는가? 그것들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가?

철학, 예술의 높은 봉우리들 위주로 가볍게 다뤄보았다. 철학과 예술. 그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다. 철학 없는 예술은 가볍고 예술을 머금지 못한 철학은 빈곤하다. 산업 혁명과 더불어 현대 문명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프랑스 혁명이다. 루소, 디드로 등등이 없다면 프랑스 혁명은 불가능하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이처럼 현대인들은 현대 문명의 바탕이 된 철학, 예술에 크게 빚지는데 철학자들은 논외로 치고 정작 예술가들은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가. 정부 지원금 몇 푼 준다고 온갖 자존심을 긁어대는가 하면 자본가들은 예술 및 예술가들을 장신구 취급하며 자기 기만에 빠진 놀이를 한다. 예술품들은 시장 상품들보다 낮게 취급되기 일쑤이며 예술품 중에도 소더비에서 경매되듯 비싸게 팔리는 것이 명작이라고 칭해지는 저렴한 세상이 지금이다. 예술가는 고대로 치면 샤먼에 속한다. 샤먼은 인간의 스승이자 제사장 아버지 격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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