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4색의 현대적 판화작품 감상하며 새해 '인생 사색'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 기획전 '목판 사색' 전시장 모습 / 송창희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 기획전 '목판 사색' 전시장 모습 / 송창희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새해 같지 않은 새해지만 언제나 새로운 시작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런 설렘 때문에 우리는 바닷가에서, 산 정상에서 저마다 일출을 보며 새해 새로운 꿈을 꾼다. 전국 유일의 판화 특화 미술관인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에서는 '목판 사색' 기획전을 열고 있다. 오는 3월 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젊은 작가 4명이 참여해 나무를 판재로 각자 다른 방식의 현대 목판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전시공간 한켠에 마련된 이하나, 배남경, 홍윤, 박보경 작가의 인터뷰 영상은 다양한 실험정신으로 꿋꿋이 자신만의 신화를 쓰고 있는 그들의 작품 탄생 과정과 작가로서의 예술열정을 엿보게 하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4인 4색의 작품을 감상하며 차분한 마음으로 임인년(壬寅年) 새해 '인생 사색(思索)'을 즐거보는 것은 어떨까. / 편집자


 

'다양한 기법 접목' 이하나 작가

전시장을 들어서면 먼저 이하나 작가의 'Sound of wind 0120'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하나 작가의 'Healing tree'
이하나 작가의 'Healing tree'

휙하고 몸이 끌려들어갈 것 같은, 혹은 나에게로 휙 불어오는 것 같은 바람이 다가오지만 그 바람은 사납지 않고 부드럽고 온화하다. 나를 위로하고 품어주는 듯한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 작가는 주로 '바람'을 소재로 목판화 작업하고 있다. 초기에는 바람의 소리를 주제로 작업했고, 이후에는 바람의 위안, 감정적이고 현상적인 공간에 대해 해석하고 표현한다. 그는 목판화 뿐아니라 드로잉, 회화, 설치, 퍼포먼스 등 여러가지 형태의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이하나 작가의 'Sound of wind 0120'
이하나 작가의 'Sound of wind 0120'

이번 전시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바람이나 소리 등을 조각칼로 목판에 새겨내는 볼록판화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들의 색감이 따뜻하고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강아지나 팔을 벌린 행복한 모습의 연인,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택시의 모습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그는 "목판화라고 하면 대부분 파고 찍고 그런 형태를 생각하는데 저는 목판화와 드로잉, 페인팅 등 다양한 기법으로 넓은 의미의 판화를 해석해 왔다"며 "관람객들이 목판화를 쓰면서도 이렇게 다양한 표현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목판 평판법 개발' 배남경 작가

배남경 작가는 일상의 사실적인 모습과 한글에 의미를 담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글씨작업은 그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삶에 대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꽃'이라는 것은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의미를 가지고 피워내는 그 어떤 것의 상징이고, '달'은 삶의 이면인 죽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죽음을 통해 삶을 완성하고 더이상 바뀌진 않지만 그것이 하나의 본보기가 되는, 우리가 이루어내는 하나의 가치다.

배남경 작가의 '달 Moon'
배남경 작가의 '달 Moon'

배 작가의 목판화는 판목을 판각하지 않고 평평하게 물감을 올려 형상을 표현한다. 꽃, 달, 몸 등 한글을 목판에 놓고 켜켜이 색을 올려 그만의 방식으로 특별한 순간을 기록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위해, 특히 회화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위해 여러차례 판각을 하면서 그 판을 계속 재판해 레이어를 만들어내고, 변화를 주면서 수십번의 인쇄를 거듭한다. 그리고 판화가 가진 특성인 '찍어낸다는 우연성'을 통해 독특한 회화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배 작가는 그렇게 목판에서 평판법을 개발해 냈고 그것을 적용해 작업하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그렇게 반복된 실험정신의 결과로 탄생한 달, 꽃, 흙 등의 한글작품과 '엄마와의 여행', '도시산책', '기도하는 사람들'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금속도구로 새기기' 홍윤 작가

홍윤 작가는 나무를 세로판이 아닌 가로로 재단해 목판용 조각칼로 새기는 새로운 방식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는 자신의 일상을 채우는 물건을 수집하고 판화로 채록하고 있다. 그가 하는 작업은 목판화 중에서 우드인그레이빙이라고 하는 기법이다.

홍윤 작가의 '차곡차곡' 찍기전 목판
홍윤 작가의 '차곡차곡' 찍기전 목판

우드인그레이빙은 동판과 같이 세밀한 표현이 가능한 기법인데, 재료는 나무를 쓰지만 그 표현 방법은 동판과 같아 세계적으로 작가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기존의 깎아내는 기법이 아니라 나무에 금속의 도구를 가지고 새기는 작업이기 때문에 동백나무나 회양목 같은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며, 보통 나무는 백년정도 된 나무들을 나이테가 보이게 가로로 절단해 사용한다.

홍윤 작가의 '차곡차곡'
홍윤 작가의 '차곡차곡'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들 속에 그 사람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고 생각하는 홍 작가는 주변의 사물을 드로잉하고 그 드로잉을 다시 판화로 옮긴다. 그가 포착한 서랍 속의 사물과 가방, 신발, 레고, 카메라 등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홍윤 작가의 '김현숙, 여 , 3남매 육아중, 41세'
홍윤 작가의 '김현숙, 여 , 3남매 육아중, 41세'

특히 '김현숙, 여, 3남매 육아중, 41세', '신미라, 여, 고양이 집사, 나이는 기밀', '박형숙, 육아휴직 3년차, 41세', '수경씨, 10년차 주부, 비밀' 등은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 당면한 삶의 현주소를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어 큰 공감을 자아낸다.

 

'바렌으로 찍어 완성' 박보경 작가

박보경 작가는 여행을 주제로 현실적인 여행지를 표현하기도 하고, 여행 속 판타지를 생각하면서 느끼는 설레임을 작품에 담는다. 또 유토피아를 꿈꾸며 그것을 작품에 옮긴다. 이번에 전시된 '보태니컬 하우스'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만난 이상적인 집들을 목판화로 찍어낸 뒤 그 주변의 식물과 자연을 수성판화로 표현해 이국적이면서도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박 작가도 나무를 가로로 재단해 치밀한 목구 목판을 이용한 판화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박보경 작가의 '보태니컬 하우스'
박보경 작가의 '보태니컬 하우스'

목질이 강한 만큼 날카롭고 뾰족한 뷰렝이라는 조각칼이 사용되고, 프레스가 아닌 바렌을 도구로 손으로 직접 찍어서 작품을 완성한다. 이러한 기법은 손의 압력이 필요해 힘이 많이 들지만 다양한 색감과 표현이 가능하다. 아파트가 빽빽한 현대도시가 아닌 자연과 행복을 느끼는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다는 박 작가는 "우리가 환상적이라고 말하는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안식과 위안을 얻기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영인 진천군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지난해 5월 증축개관전이었던 원로·중견 판화작가의 전시에 이어 판화작품의 다양성과 미래를 보여주기 위한 기획전시"라며 "젊은 작가 4인의 작품을 통해 현대 판화의 현주소를 가늠해 보고 판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