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정석윤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이땅 대한민국의 농업인들은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자면, 진짜 '쌔가 빠지게' 농사를 짓는다. 물론 이는 비단 우리뿐 아니라 농업선진국인 네덜란드와 독일 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계어디서나 농사를 짓는 농업소득만으로는 먹고살기가 힘들다. 즉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농업의 속성, 농업인의 운명, 아니 팔자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아 독일 등 농업선진국의 농업인들은 대를이어 농사를 물려주고 그 자식들은 당연하다는 듯 어려서부터 농업학교로 진학하고 가업을 물려 받는다. 가족농으로 대를 잇는 유럽의 농업인들은 "우리가 농사를 게을리하면 농촌 경관이 어떻게 망가지고 생명산업이 어떻게 위축되며 물가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지"보라며 수시로 대정부 시위를 벌인다고 한다. 심지어 은퇴해 묻힐때 '자랑스러운 농부'였다는 사실을 묘비에 당당히 새긴다.

그럼 이땅의 농업인들은 아직도 초라하고 생활고에 허덕이는데, 유럽등 선진 농업인들은 어떻게 이토록 당당하고 자신의 권리를 잘 내세우는가? 그 자존감과 자부심의 밑과 끝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농업계의 일원인 필자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 답은 너무 쉽다. 선진 농업국의 농업들은 혼자가 아니다. 직불금으로 소득을 보전받고 가족농들이 협동조합으로 서로 협동하며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해 함께 토론 하고 스스로 자치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농업과 농촌을 챙기고, 국민들마저 이런 농업인들의 고충을 걱정하고 챙겨주는 '농업인이 존경받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정석윤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정석윤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선진농업국이 '농업인의 나라'로 불리운 돌파구는 단연 직불금이었다. 사실상 농민 기본소득의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으로 농가소득의 60%가 넘는 수준이다. 여기에 친환경농업, 청년농, 스마트농업 도입, 귀농귀촌 및 소농 여부에 따라 직불금을 추가로 가산, 증액 지급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불금 규모는 유럽연합(EU) 농정예산의 무려 70%가 넘는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농협경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공익직불제 시행 2년차인 2021년에 112만 농가·농업인에게 약2조 2,263억 원의 기본직불금이 지급됐다고 하지만 농지의 자연감소 등으로 지급대상 면적이 줄어 지급총액이 '20년보다 506억원 감소했고 농촌 현장에서는 과거 특정기간에 직불금 수령실적이 있어야만 공익직불금을 받을 수 있는 규정 때문에 실경작자가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민원이 제기되고 있는등 직불금 자격요건 개선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직불금 정책은 농업인들이 "국가 나를 챙겨주고 있다"고 느끼는 고마움과 신뢰감의 효과로 바로 나타날 수 있다. 결국 직불금 같은 탄탄한 사회안전망은 신뢰, 협동, 연대 등과 같은 사회적 자본이 넘쳐나는 미래농업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자 원동력도 될수 있다.

이렇듯 새해 우리 농업·농촌의 농정 핵심기조와 추구 가치는 '돈 버는 농업'도 중요하지만 1960~80년대 처럼 '사람이 넘쳐나는 농촌'에 무게를 둬야 한다. 농업과 농촌으로 떠난 이들이 되돌아오게 만드는 숙제는 더 이상 경제학만으로는 풀 수 없다는 냉정한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앞서도 밝혔지만 이 땅의 농업인들은 희생의 역사를 안고 있다. 세계화의 파고 속에 많은 양보를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어준 것이 바로 이들이다. 이제 2022년 임진년 새해부터는 그동안 위축된 농업인과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농업과 농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야 할 때다. 이 땅의 5천만 국민의 안전하고 풍성한 생명산업을 책임졌던 이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

농업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농협 등 관련기관들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울러 지난 2년여간 코로나19로 힘든 우리 국민이 농업의 기능에 다시 주목하고, 농촌의 너른 품에서 마음껏 호흡할 수 있기를 희망함과 더불어 농업이 대우받고 농업인이 존경받는 시대가 2022년 壬寅年 흑호의 새해에는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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