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화가

떡국의 계절이다. 떡은 '덕(德)'에서 나온 먹 거리다. 밥, 빵, 라면 등은 혼자 먹거나 끼리끼리 먹는 음식이다. 그러나 떡은 온 동네와 이웃 모두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힘든 과정을 건너 만드는 음식이다. 같이 만들고 같이 먹고 같이 즐기는 덕스러운 음식이 귀한 '떡'이다.

떡국을 먹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을 나눈다. 덕담은 덕의 에너지를 나누는 말이니 덕담을 나누면서 또 한 살을 먹었으니 덕도 더욱 많이 받기를 소망하면서 한해를 시작한다. 덕이란 무엇인가? 덕(德)의 한자 풀이는 '큰 덕'이라고 하며 흔히 노스님을 '대덕'이라고 부르면서 존경한다. '도덕'은 '천도지덕(天道地德)'의 준말로 하늘이 내려 준 생명의 씨를 받아 땅이 잘 살려 기르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덕'은 땅처럼 살리는 생명의 큰 기운이고 기르는 사랑의 큰마음이다. 일이 잘 이루어 졌을 때는 '누구의 덕분'이라면서 고마워한다. 덕을 베풀면 꼭 그만큼 복이 따라 들어온다. 그래서 복덕방이다.

지금은 한창 대선 판이니 상대를 향해 덕담으로 힘을 실어 주기보다는 촌철살인의 기회만을 엿보는 듯하다. 아무리 선거판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죽어 나가는 사람이 부쩍 생겨나고 있다. 세치 혓바닥이 몸을 불태운다는 속담도 있다. 평소의 말버릇을 돌아 볼 일이다. 말은 마음의 알이며 그 쓰임을 말씀이라고 한다. 마음을 착하게 쓰면 착한 말씀으로 나오고 어둡게 쓰면 어두운 말씀이 되어 나타나니 '일체유심조'이다. 하느님께서 마음을 쓰시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만큼 한 올의 빈틈도 없고 엄중한 것이 말이고 말씀이다.

탈무드는 '말을 깃털처럼 가벼워 주워 담기 힘들다'하고 모로코 속담은 '말로 입힌 상처는 칼로 입은 상처보다 깊다'며 경고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은 곧 행위다'라고 했고 우리속담에는 '화는 입에서 나오고 병은 입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하는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는 조선시대의 가사도 있다.

경북 예천의 한 마을에는 '말 무덤'이 있다. 용감한 장군을 따르던 충직한 말(馬)의 무덤이 아닌 입에서 나오는 말(言)의 무덤이다. 비석의 앞면은 한글로 '말 무덤' 뒤는 '언총(言塚)'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마을에는 김씨, 박씨, 류씨, 최씨, 채씨 등 많은 성씨들이 거주하니 문중간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사소한 말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잦자 마을 어른들은 그 원인과 처방을 찾기에 골몰했다. 드디어 어른들은 의견을 모아 큰 구덩이를 파놓고 마을사람 모두에게 사발을 하나씩 가져오게 하였다. 그런 뒤 "서로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비방과 욕을 각자의 사발에 모두 뱉어놓으라"고 했다. 싸움의 발단이 된 말(言)들을 사발에 담아 깊이 파묻었다. 듣도 보도 못한 소위 '말 무덤(언총)'을 세운 것이다. 이 처방이후 싸움이 없어지고 지금까지 두터운 정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어른들의 지혜가 듬뿍 실린 슬기로운 처방이 아닐 수 없다.

'말 많은 집안은 장맛도 쓰다'고 하고 '천 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는다'고 했다.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고 때론 비수처럼 상대를 찌르는 무자비한 폭력이 되고 끝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나라 정치인들의 말은 덕은 온데, 간데없이 날로 더욱 독해지고 있는가? 대선이 다가오니 날로 더욱 극악해져 없는 허물도 만들어 상처를 내고도 헤 짚고 소금까지 뿌리고 있다. 요즘처럼 오불관언, 내로남불의 망언과 폭언과 욕이 판을 치는 시절도 없었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과 그들을 돕는 정치인들의 오염된 언어는 국민과 나라의 미래를 몽땅 태워 버리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코로나는 더 기승이고, 불경기와 늘어나는 세금과 나라 빚으로 설상가상 국민들의 굽은 어깨 위에 던져진다. 정치인들의 썩은 말은 전국토를 횡행하며 더럽히니 국민들은 분노하다가 지쳐 시름만 깊어진다. 가히 개싸움 판 이전투구요, 사람도 말도 지쳐버린 인곤마핍이니 모두 오늘날의 우리모습이다.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덕담은 우리의 천부경(天符經)에 이미 실려 있다. '태양앙명 인중천지일(太陽昻明 人中天地一)'라는 구절이니 "인간의 본성은 원래 태양처럼 밝으니 너희의 마음 안에 하늘과 땅이 하나로 녹아들어 있다"는 뜻이다. 조상님들이 전해주신 크나큰 덕담을 따라 모두 부디 본성의 빛을 회복해야만 한다. 그런 마음에서 나온 말은 모두가 햇살과도 같은 덕담이 되어 세상과 미래를 밝고 희망차게 만들 것이다.

덕담은 마치 떡을 먹는 것처럼 상대의 기운과 의지를 북돋아 주는 힘이 있다. 우리가 대선만 치르고 말일이 아니지 않은가! 한 그릇의 떡국을 앞에 두고도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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