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11세기 영국 코번트리(Coventry)에서 전해지는 전설적 일화가 있다. 이 지역 영주이자 백작인 레오프릭(Leofric)과 아내 고다이바(Godiva)가 살았다. 나이 차가 무려 49살이나 났다. 세금징수와 세율책정의 전권을 가진 영주는 가렴주구(苛斂誅求)의 전형이었다. 농민들은 아무리 열심히 농사지어도 굶주림을 벗어나지 못했다. 농민들의 불만과 원성은 하늘을 찌를듯했으나 그들은 영주의 막강한 권력에 감히 찍소리할 수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고다이바가 나섰다.

"농민들이 견딜 수 없는 세금 부담으로 죽을 지경이에요. 그들이 굶고 병들어 죽으면 세금을 받을 수 없잖아요. 세금을 줄여주세요." 영주는 아내의 간곡한 부탁을 무시한 채 더욱 농민들을 수탈했다. 고다이바가 집요하게 세금경감을 요청하자 영주는 생뚱맞은 조건을 내걸었다. "당신이 옷을 벗은 채 말을 타고 영지(領地)를 돌면 요청을 받아 주겠소." 당시 나이 16살에다 귀족 부인임을 고려하면 고다이바가 참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못하겠어요."란 답을 확신했던 영주는 충격 아닌 충격이었다. 아내가 "기꺼이 하겠어요."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고통받는 농민을 위해 자신의 수치심을 포기했던 거다. 약속대로 고다이바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았다. 농민들은 고다이바의 희생정신에 탄복해 그날 창문 커튼을 내리고 외출을 하지 않았다. 누구도 고다이바의 모습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양복점 직원 톰(Tom)이 알몸의 고다이바를 창문 틈으로 훔쳐봤다. 순간 톰은 강한 햇빛에 눈이 멀었다. 이때 'Peeping Tom(관음증)'이란 용어가 생겼다,

영주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아내와의 약속을 지켰다. 농민들은 혹세(酷稅)에서 벗어났다. 고다이바는 농민들로부터 추앙을 받았고, 그 후 코번트리는 '말을 탄 여인의 모습'을 지역 상징으로 정했다. 고다이바 일화를 다룬 많은 그림 중 1897년 영국 화가 존 콜리어의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요즘 우리 백성들도 세금 증가로 아우성친다. 특히 부동산 관련 세금이 그 기폭제가 됐다. 표준 단독주택, 표준지(標準地), 사무용 오피스텔 등 부동산 관련 납세율을 결정하는 기준금액들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상속·증여세, 취득세, 양도소득세, 보유세,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부동산 관련 세금 증가로 이어진다. 코로나19 피해 증가로 요구되는 추경예산의 재원 마련방법도 세금을 더 걷는 거다. 이런 와중에 대선 후보들은 추경예산 규모로 '100조 원이니 50조 원이니'하며 마구 떠들어 댄다. 선거용으로 생색내겠다는 꼼수가 아닐 수 없다. 득표, 아니 합법적 매표 방식인 포퓰리즘이다.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덜기 위해 누구라도 옷을 벗은 채 말을 타고 전국을 순회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누가 그 총대를 멜 것인가? 고다이바 같은 사람 어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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