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대장암 판정을 받으시고 본인이 직접 사용하시던 대자귀와 연장들을 챙겨 저에게 주시며 '앞으로 우리나라의 큰 대목이 되야혀' 말씀하셨던 어르신…. 수술 후 요양병원 치료 중에 산책길에 눈여겨 보았던 물푸레나무를 하루는 톱질을 하시고 다음날은 들고 내려갈 정도로 재단을 하셨습니다. 다음날은 힘이 닿는데까지 들고 오시다 내려놓고 그 다음날에도 들고 오시다 내려놓으셨습니다. 이렇게 몇 날 몇 일을 들고 내려와 잘 두셨다가 병원에서 퇴원하신 얼마 후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집으로 한번 들러. 줄게 있으니께'. 다음날 어르신을 찾아뵈니 '일호 줄려고 내가 산에서 직접 베어 왔다'며 묵직한 물푸레나무 토막을 주셨습니다. 목수가 목재를 찍어서 깎고 가공하는 연장인 대자귀의 집으로 물푸레나무로 만든 게 최고라 하셨지요. 제가 진정 잘 되길 바라시는 어르신의 진심이 느껴져 뭉클했습니다. 지난 해에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새롭게 제작한 한울한옥 회사 소개서를 들고 새해 인사를 드리려했는데…. 저를 늘 응원해 주셨던 대목수 어르신 마지막 가시는 길 동행해드렸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그곳에선 편히 쉬세요."

한울한옥의 대표이자 도편수인 이일호 씨의 페북글을 읽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었다. 정진화 대목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인데 나는 그 분을 뵌 적도 없다. 그러나 평소에 연로한 목수들을 많이 생각하고 그들의 귀중한 기술들이 단절되지 않고 전승되기를 염원하는 이일호 대표의 마음을 잘 알기에 가슴이 저몄다.

의식주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동물은 별도의 옷을 입지 않는다. 인간은 옷을 입는다. 옷을 입으려면 옷을 짓는 행위가 필수이다. 그것엔 숱한 것들이 선행될텐데 손의 덕택이 기본일 것이다. 동물은 날 것을 먹는 반면 인간은 불에 익혀 먹을 줄을 안다. 인간이 먹는 행위엔 불의 존재가 필수이다. 그러기에 입고 먹는 것에 대해선 손과 불이 기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득한 시절의 직립과 불의 발견에 기인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입고 먹는 것에 아득한 고고학적 흔적이 배어있는 것이다.

동물도 집이 있다. 둥지나 굴, 풀섶 등 말이다. 동물의 집과 인간의 집 사이에 역시 허다한 차이가 있겠지만 담의 존재가 기본이 아닐까 싶다. 동물 중에도 집 둘레에 담을 쌓는 것도 있을까. 모르긴 해도 아마 없을 것 같다. 그에 반해 인간은 집 둘레에 담을 쌓곤 한다. 집과 담 사이의 공간. 그곳에서 옷을 짜고 김장도 하고 가축도 기르고 식물도 가꾼다. 평상을 깔아 그 위에서 수박도 먹고 술도 마신다. 생활이 일어나고 문화가 생성된다. 그 집집마다의 마당은 이웃 마당과 이어져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색다른 문화로 꽃 피며 넓게 퍼져나간다. 손과 불, 마당. 손과 불이 원시적인 획득과 발견에 밀접하다면 그런 층층의 축적 후에 마당이라는 발명을 인간은 해낸 것이다. 그런 의식주의 하나로서의 집. 선조들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우리의 몸과 익숙하나 서양 문화의 물결에 밀려 충분한 성찰조차 거치지 않고 퇴조되다시피한 한옥. 이일호 대표를 만나기 전에도 그런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가 한옥에 대해, 목수들, 전통의 가치와 단절, 젊은 도편수로서 소중한 자산을 현재와 미래에 잇게 하려는 의미 깊은 노력들에 공감을 하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미처 몰랐던 대목수가 대장암 수술 이후에도 산을 오르며 물푸레나무를 보며 후배를 생각한다. 그 나무를 베어 후배에게 전해준다. 저 물푸레나무 토막이 집이 되어 그 안에 담길 대자귀. 직립과 불에 이어 인류 문화의 축적 후에 마당을 끌어안은 집 중의 한옥. 이일호 도편수가 어느 한옥을 지으며 저 물푸레나무 집에서 대자귀를 꺼낼 때 마음이 어떠할까. 이토록 아름다운 마음과 우리 고유의 자산들이 우리의 현실에 보다 넓게 확장되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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