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과 개밥바라기
샛별과 개밥바라기
  • 중부매일
  • 승인 2022.01.2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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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한 지인이 33년의 회사 생활을 마쳤다. 체력으로 보나 지력으로 보나 퇴직하기엔 너무 아까운 나이인데도 말이다. 60세에 퇴직해야 하는 사규 때문이다. 근로 수익이 없다 보니 생활비에 턱없는 퇴직연금에 목매야 한다. 해결책은 새로운 일자리 구하기다.

환갑이라고 '에험' 할 수 없는 시대다. 꽤나 오래전부터 60세는 노동 종료 문턱이 아니다. 삼식이(三食, 집에서 하루 세 끼 식사)나 간나세끼(세 끼 식사에다 간식까지)라며 아내한테 구박받을 나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는 이른바 신중년(新中年, 5060세대 청년과 노년 중간)이다. 신중년이 일할 의욕은 물론 육체, 정신적 능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점에서 국가도 이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하고 있다.

달콤했던 9개월의 실업급여가 지난해 말 끝났다. 그동안 전 직종과 연관된 업종, 아니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녔다. 발품에 비하면 구직은 그리 쉽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다 젊은이에 밀려 일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십여 곳에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도 봤다. 대부분 나이가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지성감천! 운 좋게 별 하나를 땄다.

올 1월 3일 첫 출근. 집과 사무실 간 거리가 30㎞다. 버스를 이용한다. 한 번 갈아 탄다. 집에서 정류장까지 10분 걷고 버스를 탄다. 두 번째 정류장에서 회사 앞 정류장까지 50분 정도 걸린다. 6시 55분 집을 나서 회사 앞 정류장에 8시 25분 도착한다. 여기서 사무실까지 걸어간다. 신호등 두 개를 지나 사무실 출근 얼굴 인식기에 '슬라이딩 세입'이다.

출퇴근할 때 하늘에 유난히 빛나는 별이 있다. 금성(金星, Venus)이다. 지구와 비교적 가까이 있는 행성으로 지구 안쪽에서 태양 주위를 돌며 새벽과 저녁에 선명한 빛을 발한다. 금성은 시공간에 따라 달리 불린다. 새벽 동쪽 하늘에 반짝이는 금성은 '샛별'이다. 해 질 녘 서쪽 하늘에 보이는 금성은 '개밥바라기'이다.

하나의 실체인 금성을 왜 시공간에 따라 달리 표현하는 것일까? 동체이명(同體異名)인가 말이다. 반복되는 시작과 마침,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와 휴식이 그 이유다. 일상적 삶과 밀접하다는 얘기다. 물론 일출과 일몰의 전조에 대한 감흥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샛별은 '새벽 별' 또는 '새로 난 별'의 줄임말이다. 빛으로 어둠의 잠을 깨우고 새로운 하루를 보람차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하루는 늘 반복되지만, 어제 것이 아닌 어제와 차이 나는 하루다. 어제 보았지만, 오늘 본 샛별은 어제의 별이 아닌 늘 '새로 난 별'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무한한 잠재력의 상징이다.

개밥바라기는 '개 밥그릇'이다. 하루의 종료와 먹거리를 상징한다. 샛별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은 개밥바라기를 보며 마친다. 단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반복하는 내일을 위해 휴식하며 새로운 날을 준비한다. 하루를 마감하고 시작을 잉태한다. 왜 하필 개 밥그릇에 비유했을까? 인간은 노동의 동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노동은 자아실현의 숭고한 수단이다. 그보다 의식주를 위한 수단이 더 맞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먹거리를 얻는다. 개밥을 담는 그릇인 개밥바라기는 사람들이 고달프게 포획한 먹거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인생 2막을 잘 대변한다. 그는 인생 1막에서 샛별과 개밥바라기를 의미 있게 바라본 적이 없다. 이젠 아니다. 샛별은 그의 어둑한 길을 비춘다. 인생 2막의 방향을 제시한다. 무언가 자신감이 생긴다. 그저 잉여 인간 혹은 보이지 않는 인간이 아닌 당당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확신 말이다.

어둑할 무렵 귀가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자리 이동한 개밥바라기를 내장이 훤히 비친 시내버스 안에서 본다. 개가 사람이 먹다 남은 밥이 채워지기를 기대하는 밥그릇을 쳐다보듯 말이다. 저녁밥을 먹은 뒤 다시 시작하는 내일을 위한 채비를 서두른다. 한마디로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부침, 시종, 차이 나는 반복 등 삶의 과정을 여실히 드러내 표현 가치가 높은 용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60세는 귀가 순해지는 나이로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한다(六十而耳順)' 공자가 괜히 한 말이 아니다. 경험, 연륜, 지식, 지혜 등으로 현실력과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언표다. 그는 어제 개밥바라기를 보며 퇴근했다. 오늘은 샛별을 보며 일터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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