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조성 충남연구원 재난안전연구센터장

광주에서 신축중인 아파트의 외벽 붕괴사고가 발생해 연초부터 건설사업장에 대한 안전강화 요구가 뜨겁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6월 철거건물 붕괴사고를 낸 바 있다. 불과 7개월 만에 또다시 대형 참사가 발생했고, 국내 굴지의 대형건설사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어이없는 수준을 보여 총체적 부실기업이라는 오명을 피해가기 어렵게 되었다.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공기단축, 콘크리트 불량, 편법 재하도급 정황이 드러나면서 어떻게 처벌될 것인가에 대한 시나리오들도 쏟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회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안전점검 결과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수분양자 계약해지는 물론 완전철거와 재시공까지 고려한다는 강한 메시지도 남겼는데,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책임 회피를 위한 꼼수 사퇴라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였다면 정 회장은 1년이상의 징역,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만약 앞으로 또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면 회장이 당연히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대주주인 회장이 이런 모양을 취하는 것이 좋게 비춰질리 없다. 앞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처벌대상은 피해가겠다 하는 시그널을 남긴 것 아닌나. 안좋은 것은 피하고 실질적으로 해결은 되지 않고, 사과하는 모양은 취하면서 언론에 홍보만 하는 모양새가 읽혀버렸다. 회사로부터 거액의 보수를 받고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책임경영에서 교묘히 빗겨가는 행태는 우리 자본주의의 참 기이한 모습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경영책임자가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를 필요로 하는 부상자가 2명이상 발생한 경우와 같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대표이사 등 사업 총괄 책임자가 강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상시근로자가 5명 이상인 사업장 전체에 안전 보건에 대한 의무가 강화되며,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경영책임자와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지방공기업 공공기관의 장도 마찬가지로 책임 주체가 된다.

이 법은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우리에게 주어졌다. 세월호 참사의 경험과 고 김용균씨의 죽음을 거치면서 사회전반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지만, 그 시작은 2001년 '산재사고처리에 관한 특별법' 입법 청원으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후 2003년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캠페인이 시작되었고, '기업살인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 되었다.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의 책임 문제가 사회의 재난안전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책임 논의로 이어지면서 이것이 지금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법률안으로 모여지게 되고, 19대 국회, 20대 국회를 거치면서 국회의 심의조차 되지 못하다 2021년에 들어서야 누더기가 된 채 제정되게 된 것이다. 처벌만이 능사인가 하는 시각이 존재하고, 이러한 법 시행으로 무엇이 달라질까 하는 회의적인 자조도 예상치 못하는바는 아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들도 재해발생 현장에 적용할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칙과 조항을 갈팡질팡하는 현실 속에서 노동자의 목숨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워낸 결과가 이 법으로 담겨졌다는 것은 슬프지만 큰 의미를 갖는다.

법의 목적은 처벌이 아닌 재해의 예방에 있다. 안전은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에 대한 인식수준은 최근 몇 년간 지극히 높아졌음에도 기본적인 안전조치도 없이 발생하는 추락, 끼임 같은 산재사망과 무책임한 기업의 이윤추구로 발생하는 참사들은 기존의 법을 넘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자체를 들여다 보면 아직도 갈길이 멀다. 보편성과 체계성이 부족하고, 처벌 수준의 강도에만 치중한 것이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돈 많은 대기업이 훌륭하신 변호사나으리들의 조력을 받으면 무죄로 판결될 가능성이 크고, 원청과 하청이 각각의 수준에서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는 조치들을 분장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도 부족하다.

조성 충남연구원 충남재난안전연구센터
조성 충남연구원 충남재난안전연구센터

그동안 일터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죽음과 신체의 손상을 '법으로 조차' 해결해주지 못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어도 현장에서 적용하고 개선할 줄 아는 관료가 없었고, 중대재해의 원인을 조사할 전문 인력도 없었다. 구조적 원인을 찾지 못한 결과는 기존의 기소 관행에 익숙한 법조인들에게 책임소재를 구체화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기업의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되는 근거를 제시했던 것은 아닌가. 법은 시작되었고, 이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애써야 한다. 노동자와 그들이 연대한 조직들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중대재해에 대해 행정, 사법 전 과정에서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사회적 감시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노동자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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