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은지 문화부장

새해 벽두부터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간송의 후손들이 국보 2점을 경매로 내놨기 때문이다. 간송의 장손 전인건씨는 이미 2020년 재정난을 이유로 보물 불상 두 점을 내놓은 바 있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에 사비를 들여 문화유산 수천여점을 사들이고 보관해왔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그의 유지(遺旨)를 이어가기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

기억을 거슬러보자면 지난 2013년 가을, 간송미술관과 성북구립미술관을 우연한 기회로 다녀왔다. 당시 간송미술관은 '진경시대 화원전'을 펼쳐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등 21명의 대표작 80여점을 선보였다. 기억하는 것은 전시를 보기위해 수백미터 늘어선 대기행렬, 인산인해를 이룬 전시장, 여기저기서 터지던 관람객들의 탄성 등이다. 코로나 3년차, 이젠 생경한 기억이 됐다.

간송미술관 인근 성북구립미술관에서는 '위대한 유산展'이 열렸다. 간송미술관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발걸음 한 곳이기도 하다.

간송미술관보다 이곳에서 두 번을 놀랐다. 첫째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족문화재에 대한 애호와 열정만으로 미술품 수집에 나섰던 수장가들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두번째는 오세창, 김찬영, 이병직, 함석태, 김양선 등 근대미술품 수장가 14인의 뛰어난 심미안과 감식안 때문이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국립청주박물관 관계자들을 만나 공통적으로 화두에 올랐던 것은 '이건희 컬렉션'이다. 취재과정 중 자연스럽게 청주에 석조물 800여점이 이관됐다는 것도 듣게 됐다. 그 과정에서 청주시의 통큰 배려와 국립청주박물관의 적극적인 물밑협상 노력도 읽혔다.

뉴스가치로 충분했고 팩트 확인도 끝났지만 기사는 바로 쓰지 못했다. '이건희 컬렉션'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정치권, 타 지자체들 간의 정치적 셈법이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었다. 이는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가 가칭 '이건희 기증관'으로 확정된 순간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이건희 컬렉션' 유치가 불발된 지자체들의 성토가 이어졌고 곳곳에서 민심달래기식으로 올해 '쪼개기 순회전'도 개최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살아 생전 초일류기업을 자처하며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던 이건희 회장. 그가 차곡차곡 사 모은 미술품은 여기저기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며 박물관과 미술관에 등록도 되기 전에 '빛 좋은 개살구' 노릇을 하는 모양새다.

박은지 문화부장
박은지 문화부장

간송 수장품의 고증과 감정에 깊이 관여해 온 '미술품 수장가' 오세창은 지난 1938년 자신이 지은 보화각(현 간송미술관) 지석(誌石)에서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고 한다. "서화는 심히 아름답고 옛 골동품은 자랑할 만하다. 이곳에 모인 것들 천추의 정화로다. 근역에 남은 주교로 고구 검토할 수 있네. 세상 함께 보배하고 자손 길이 보존하세."

애호가들은 떠났고 그들이 생전에 치열하게 모았던 예술작품은 회생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위대한 유산은 무엇인지' 다시한번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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