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어김없이 하순이 되어 신문구독료를 낼 때다. 수금하는 이가 큰 목소리로 안부를 묻고 나는 돈을 건넨다. 오늘은 반드시 얘기를 해야지 하고 전국지 하나를 그만 보겠다고 한다. 왜 중단하려는지 궁금한가보다. 분명한 이유가 있어도 이런 땐 말이 술술 나오지 않는다. 벌써 두세 번이나 겪는 일이다.

신문 면수가 칠십 쪽이 넘어 대충 보려 해도 적잖은 시간이 걸려 시간관리가 잘 안 된다. 더 짜증나는 것은 삼분의 일 정도는 전면광고라는 게다. 정보를 얻고 견해를 살피라는 건지 광고를 보라는 건지 모르겠다. 말끝에 구독료가 올라 부담된다고 했더니 반년을 무료로 넣어 줄 테니 그냥 보란다.

이십대 이전부터 보던 신문이라 애정이 깊다. 이번에도 분명하게 자르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말았다. 끊으려 했던 전국지에 내 신앙과 궤를 같이하는 전국 일간지, 지역신문 두 개를 더하면 네 개의 신문을 구독하는 셈이다. 아내는 내게 신문을 꼼꼼히 챙겨보는 것도 아니니 줄이란다. 쉽지가 않다. 지역신문에서 생활정보를 얻는다. 내 사는 곳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는 이들의 글을 가끔씩 접한다. 내 하는 일이 최신정보를 너무 몰라서는 곤란하다는 판단도 있다.

읽고 들은 정보의 총합이 한 사람의 견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목소리가 크거나 분명하지 못하고 판단이 명쾌하지 않아 민망할 때가 많다. 정보와 지식을 접하는 주요 통로가 신문과 방송 그리고 책이다. 나로서는 방송을 신앙 스포츠 뉴스와 기분풀이로 나눈다. 어떤 분야에 좀 더 집중하는가가 다를 뿐 정치색은 모두 비슷해 보인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가끔은 겹치기 중계가 흔하고 다루는 화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게 신문일 텐데 내 사고의 틀과 전혀 다른 것을 오래 견딜 자신이 없다. 익숙한 것들을 계속 접하는 건 같은 부류의 정보와 해석의 누적이어서 내 사고에 어떤 진전과 개선을 가져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새로운 것들과 부딪쳐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익숙지 않아 겨우 유지하고 있는 것마저 무너질까 걱정이다.

책은 더 자신이 없다. 신간을 지속적으로 구입하기엔 경제적 부담이 크고 적절한 서적 정보를 얻기도 어렵다. 자주 중고서점에서 조금 낮은 가격으로 책들을 사는데 그마저 제 때에 읽지 못해 압박을 받는다. 책읽기를 통한 지식의 습득은 선호하는 분야에 치우칠 염려가 있다. 그에 대한 최소한의 방비가 독서회 활동이었는데 코로나 여파로 쉽지 않다.

내 모습이 얕은 물에서 그 물을 이기지 못해 허우적대고 있는 어린아이 같다.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해내지 못하니 무엇을 탓하랴. 신문구독중단도 제대로 처리 못해 몇 년을 머뭇거리는 게 측은할 뿐이다. 그러니 친구들은 현직에서 물러나 제2의 인생을 힘차게 펼쳐 가는데 나는 하는 일에 아직도 기본을 익히지 못하고 성과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게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위안을 삼기는 그래도 나 같은 이들이 이 땅에 더 많으리라는 게다. 얼마 전에는 수년간 이 땅을 어지럽게 했던 이에게 대법원에서 중형의 확정선고가 내려졌다. 중심을 잡아줄 이들이 아직은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 머뭇대는 성격을 고칠 수 있을까? 아니, 왜 꼭 그것을 고치려하나 하는 의문이 불현듯 솟아오른다. 그게 진짜 나다운 모습은 아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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