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전 세광고 교장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다. 경제규모는 명실공이 G10에 진입했고, 구매력 기준으로는 3만 불을 넘어서며 일본을 앞질렀다. 30-50클럽, 인구 5천만 명에 3만 불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세계 7대 선진국에 포함되는 영예도 누리고 있다.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다수는 선진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갖는데 주저한다. 최저출생률, 최고의 자살률, 최상위 갈등지수 등 압축성장의 부정적인 요인들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한 만큼 성숙한 품격이 갖추어지지 못한 것이다. 선진국의 조건은 물질적인 성장을 넘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되고, 국민의 존엄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수호될 때 달성된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제일 우선해야 할 과제다.

2022년 들어 선진국의 품격을 무색하게 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광주아파트 공사현장 붕괴 사고, 양주 석재 채취장 매몰사고, 여수 산단 화학공장 폭발사고 등 산재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마다 2천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는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세월호사건' 이후 큰 충격과 아픔을 겪었음에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강력한 법안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행한 사건들이 지속되는 것은 생명과 안전 보다는 자본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물질 중심의 가치관이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문제가 된 공수처의 통신 사찰 또한 선진국의 위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안이었다. 공수처의 무차별적 사찰은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코로나19 방역 대책으로 개인정보를 국가가 추적하고 감시한 것은 판데믹 상황에서 불가피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통신 사찰은 차원이 다르다. 얼마 전 페이스북이 개인정보 유출로 천문학적인 배상을 한 것은 선진국이 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엄중하게 관리한다는 대표적인 사례다. 공수처는 고위 관료의 비리만 처벌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고위공직자의 위법도 감시하고 처벌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전 정부에서도 있어왔고, 다른 치안 부서도 해왔는데, 공수처의 사찰만 문제 삼느냐는 공수처장의 항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착잡할 뿐이다.

최원영 세광고 교장
최원영 세광고 교장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 또한 선진국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정책과 비전을 중심으로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 기준은 사라지고 상대방 흠집 내기에 혈안이 된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선 후보 당사자의 검증이 아닌, 배우자의 문제를 불법녹취를 통해 공격하는 행태는 선거 자체를 여왕선거로 희화화 시켜버렸다. 사회적 신뢰를 제고하고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할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들이라 할 것이다. 국민을 무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여야 모두 예외가 아니다.

선진국의 위상에 맞는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기본권을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을 두려워하는 위정자를 선택할 수 있는 국민의 혜안이 필요하다. 2006년 개봉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오는 대사,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할 게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 임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던져주는 귀중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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