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뭇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져주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가치관입니다.

나라의 만신이 된 서해안 배연신 굿, 대동 굿 기능보유자 김금화님이 자서전을 통해 밝힌 속내다. 세상 사람들의 울음 대신 울어주는 인간의 대리자요 신의 분노를 인간에게 전하는 대리 신이다.

한국전쟁에서 또는 삼풍백화점 붕괴, 2002년 연평 해전. 천안함 사건, 세월호 위령제까지 비극 중에도 비극으로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장소에는 언제나 김금화 만신께서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신의 제자를 성직자로 인정하기는커녕 홀대한다. 그 예를 들자면 만신 김금화 옹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기를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위해 미국을 갔다. 공연장에서 한국영사관 직원들이 김금화 옹이 차려입은 무복을 보곤 놀라서 "나라 망신시킬 일 있느냐. 무슨 굿이냐. 당장 데리고 나가라"며 무대에 못 나가게 막았다.다른 공연 다 끝나고 한 머리는 카펫을 걷고 관객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는 판에 김금화 만신의 미국 공연을 제의했던 조자용 선생이 가까스로 미국 영사를 설득했고 김금화 만신을 떠밀어서 무대엘 올라갔다고 한다. 그러니 혼신을 다할 수밖에. 한두 거리굿을 하고 작두를 타 보였다. 그때?공연장에 있던 관객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평소 무병巫炳에 시달리다가 영검하다는 소문 듣고 내림굿을 의뢰하며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교회나 절에 다니면서 열심히 기도하며 살라고 조언해서 보냈단다. 신딸을 받아들일 때는 의외로 큰돈을 받는데 그걸 거절한 것이다. 근래에 덜 익은 무당이 신기가 있다고 무조건 내림굿을 함부로 했다가 반거충이 되어 뒷전에서 논다.현실에서 그분처럼 노래, 독경, 춤까지 몇 시간씩 해내는 완벽한 무당은 의외로 전국에 몇 분밖에 없다고 한다. 무당을 마스터했다는 것은 돈벌이보다 무당 자체에 의미를 두고 엄하고 빡센 수행을 거쳤다는 뜻이다. 즉 무병을 앓다가 찾아오는 이들에게 큰돈 받고 내림굿 해주는 쉬운 돈벌이를 뿌리치고 작두타기, 유리 밟기, 몇 시간씩 노래하고 춤추기 같은 고행을 10년 이상 해냈다는 의미다. 어떤 종교든 제대로 된 성직자라면 속세의 부귀영화는 자기 직위에 맞는 최소한의 연만 두고 자기 수행과 수련을 하시는 것처럼 무당도 예외가 아니다. 종교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무당의 지위는?사제 혹은 신관과 같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굿판을 본다면 오히려 한국적인 퍼포먼스가 신비롭고 인상적일 수 있다. 토속신앙이든 개신교 불교 할 것 없이 종교를 편향적 시각으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만신 김금화님 같은 경우 기록을 보면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서해안 풍어제의 흐름을 이어 왔다. 이분의 굿은 스페인, 일본, 러시아, 미국, 오스트리아, 중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전 세계에 우리 토속 문화와 정신을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며 인간의 가슴속 한을 풀어주었다. 타 종교의 성직자와 다를 바 없이 신제자로서의 길만 가슴에 담고 초월적인 존재 신의 성스러움에 순응 하신 분이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열일곱에 신내림을 받아 평생 만신의 길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상처를 보듬고 슬픔을 위로하는데 최선을 다하셨다. 이분의 삶이 마치 굿판 같은 인생이요, 그의 굿판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사를 신명으로 승화 시킨 드라마다. 2019년 이승을 떠나실 때 그분에게 보살핌을 받은 많은 신제자들이 배웅하는 장면을 TV 화면으로 보면서 저승에서는 편히 쉬소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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