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이번은 여러모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선거였다. 공약은 어디론가 저 멀리 뒤처져 있고 상대 후보 헐뜯기와 폭로전이 난무했다. 총칼 대신 입으로 싸웠지만, 한국전쟁에 비유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치열하면서 옹졸하기 그지없었다.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선거사의 유산이라 치부해버리면 뭐 그리 비난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은 양상이 크게 달랐다. 폭로나 비난의 주된 대상이 후보자가 아닌 가족이라는 점이다. 유권자의 흥밋거리기도 했지만, 분노를 유발했다. 여론조사에서 오차 범위 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후보자들의 가족에 대한 폭로와 비난이어서 더욱 국민의 공분을 샀다. 가족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자가 어찌 나라를 다스리겠느냐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정작 국정 운영 계획과 공약 등이 수면 아래 괴어 있었다. 빙산의 일각이었다고나 할까. 승자독식의 철칙이 철저하게 고수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일단 붙고 보자는 심리의 발로라고 몰아붙이기에는 너무 지나쳤다. 도대체 대통령의 아내를 뽑는 것인지 착각할 정도였다.

여론조사 결과 특정 두 후보가 독보적인 표심을 장악했던 것도 이번 선거의 지적 거리다. 누구든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면 되지만, 반쪽 대통령이라는 불명예에 따른 국정 운영의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국민 분열의 험로가 우려된다. 선거기간 이전부터 똘똘 뭉쳤던 진보와 보수 진영의 결집은 선거 후에도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정치사의 고질적 병폐이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지역갈등 역시 이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젠 경쟁 대상이 아닌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적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국민통합 불가론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대한민국은 또다시 불운의 정치사를 기록할지 모른다. 정치 보복이다. 후보들이 툭툭 내뱉는 선거전의 일성에서 정치 보복이 없다고 믿기가 정말 어렵다. 어느 후보는 우회적으로 강력하게 시사한 바도 있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적폐청산은 맞다. 하지만 많은 역대 대통령이 그랬듯이 적폐청산을 빌미로 마구 정치 보복을 했던 것이 문제였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시켰다. 어느 대통령도 정치 보복의 고리를 무 자르듯 자른 적이 없었다는 얘기다. 임기 말 자기 무덤을 판 경우가 많았다.

'낙선자 감방 행'일 정도로 두 후보 간의 치열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끝났다. 새 대통령을 일단 믿어보자. 사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기 일쑤였으니 권하기조차 민망하다. 지금까지 대통령 잔혹사가 대통령의 통치력 부실에 큰 원인이 있었지만, 분열된 민심과 그로 인한 맹신과 불신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분열된 대한민국을 유기적, 화학적으로 융합할 수 있도록 새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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