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영주 국학원 상임 고문·화가

구 소련말기에 우크라이나의 수도 '카이우(키예프)'를 방문 한 적이 있다. 카이우는 동유럽의 고도로 '루스 도시들의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루스족'들은 9세기에 유럽 러시아, 우크라이나 일대에 노브고로드 루스, 키예프 루스를 건국했다. 이후 현지 토착 슬라브인들을 지배하며 동유럽 전역에 여러 도시 국가를 건설했다. 지금의 '러시아' 나 '벨라 루스'의 전신이다. 그러므로 지금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피를 나누고 역사를 공유한 형제간인 셈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드니프르' 강을 중심으로 황금색 돔의 사원들과 옥색의 건물들, 장엄한 수도원들과 경건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크라이나 흑토(黑土) 지대는 아르헨티나 팜파스, 북미 프레리와 함께 세계 3대 곡창지대이고 유럽의 빵공장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풍요롭고 아름다운 도시의 중심지에는 허물어진 큰 건물 한 채가 유령처럼 서있었다. 서기 1,240년 몽골의 침입에 약탈당하고 불타버린 사원으로 이미 78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날의 비극과 수치를 잊지 않겠다는 뜻에서 제거도 보수도 하지 않고 교훈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말 잘 타고 용맹한 코작크 유목민들의 후손이기도 하니 순박하나 강인한 성격들이라는 인상이다. 그런 나라가 같은 줄기인 강대국 러시아의 공격으로 명운이 경각에 달렸다.

푸틴의 강력한 압박으로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우크라이나에 홀연 '젤렌스키'(V. Zelensky)대통령이 나타났다. 그는 유태인으로 1978년 태어나 17세부터 TV 코미디 쇼에 출연하였고 법학을 전공한 후 배우 겸 방송 제작자가 되었다. 우크라이나의 국민 TV드라마인<국민의 종>에서 부패한 정치를 척결하는 대통령 역을 밭아 일약 국민배우로 부상했다. 드라마가 끝난 뒤 실제로 <국민의 종>정당을 창당하고 2019년 '포로셴코'를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때 낙선한 '포로셴코' 전 대통령 역시 소총을 들고 시가전을 준비하는 감동적인 사진이 세계에 전달되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탈출 권유에 "나는 도피가 아니라 무기가 필요하다."며 전투 막사 같은 집무실에서 절규한다.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나의 마지막일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유럽의 이상을 위하여 죽어 가고 있습니다." "나도 인간이기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두려움을 느낄 권리도 없습니다." 등 목숨을 내려놓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생명 본연의 소리를 연일 토해내고 있다. 간밤의 '젤렌스키' 안부를 확인하고서야 하루를 시작한다는 세계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총을 든 미스 우크라이나, 참전을 위해 되돌아오는 수많은 사람들,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서는 농부, 화염병을 만드는 70세의 할머니까지 고향과 도시와 모국을 지키려고 우크라이나는 분연히 일어섰다. 기자가 갓 대통령이 된 '레이건'에게 물었다. "어떻게 배우가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까?" '레이건'이 답한다. "어떻게 대통령이 배우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대통령이란 자리는 공익을 위해 사익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연기와 실제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절절하게 내려 놓아야한다. 언제까지 죽을지 모를 '젤렌스키'는 채플린에서 처칠이 되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인가! 사람이 제 할 일을 다 하니 하늘이 돕는다. 3월이 되면 우크라이나의 드넓은 평야엔 진흙 밭 '라스푸티차'가 펼쳐진다.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큰 곤욕을 당한 우크라이나 특유의 자연환경이다. 호호탕탕 진격하던 러시아 탱크부대가 수도 카이우 북쪽에서 64km에 걸쳐 제자리에 늘어져 멈춰선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평택까지의 도로에 러시아의 탱크와 장갑차가 빽빽하게 늘어선 채 며칠간이나 멈춰 서있는 셈이다. 이걸 모를 리 없는 푸틴이지만 늦게 진격한 이유는 베이징의 동계 올림픽에 지장이 없게 해달라는 '시진핑'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급했겠지만 우크라이나쯤은 사나흘이면 두 손 들고 항복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에 푸틴 스스로 넘어갔다. 독재자 특유의 '오만증후군'에 빠진 푸틴이기에 전쟁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경적필패(輕敵必敗)'로 함몰된 것이다. 시진핑, 푸틴, 김정은 등은 자기애가 강한 장기집권의 독재자들이며 분명 '오만 증후군'의 '라스푸티차'에 빠져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들도 이웃도 한층 더 위험해지는 것이다.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이제 온 나라를 흔들었던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도 마감이 되었다. 굶주린 자에게 밥을 주고, 아픈 자를 치료해주고, 어리석은 자에게 지혜를 전하는 것은 옳고도 밝은 일이다. 곤경에 빠진 자들과 나라를 구하는 것은 옳고도 밝고도 강한 일이다.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는 부국강병으로 '나와 민족과 인류'를 구할 수 있는 '홍익인간 정신'을 높이 진작해야 한다. 대통령이 '필사즉생의 의지'로 앞장설 때 자타 공인 '의병의 나라'인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대한민국은 한반도와 아시아를 초월하여 지구촌 모두의 진화를 이끌어 갈 수 있다. 드디어 인간의 야만성은 핏줄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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