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나인문 대전세종본부장

"들어올 때처럼 작은 옷가방 두 개 들고 나갈 겁니다."

제11대 인도 대통령에 당선된 압둘 칼람이 취임식 때 한 말이다.

인도 남부지방의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인도사회의 비주류임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압둘 칼람은 실제로 퇴임할 때 그 약속을 지켰다.

마드라스공대를 졸업한 후 항공 공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신형 미사일 개발에 성공해 '미사일 맨'이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그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았던 과학자였던 그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았던 인물이다.

퇴임 9년 후인 2015년 7월 27일 한 대학원에서 강연 도중 쓰러져 숨을 거둔 뒤 그가 12억 인도인에게 남긴 유산은 책 2천500권, 셔츠 6장, 바지 4벌, 양복 3벌, 구두 2켤레가 전부였다.

온 국민에게 사랑 받았던 대통령이자 과학자, 힌두문화를 사랑하고 존중했던 알둘 칼람의 삶은 미사일보다 강하면서도 그가 매일 연주했던 현악기 '비나(Veena)'처럼 감미로웠다.

"(대통령궁에 들어올 때) 내가 가진 것은 작은 옷가방 두 개뿐이었다. (나갈 때도) 그 가방을 가지고 나갈 것"이라는 약속을 지킨 압둘 칼람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씁쓸한 것은 왜 일까. 아마도 우리는 지금껏 그런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역사는 누가 대통령을 했느냐 보다, 어떤 대통령이었느냐를 더 중시한다. 그만큼 '물러난 후'가 더 어렵다는 얘기다.

'존경하는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으면 손사래부터 젓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는 어찌 보면 참으로 불행한 나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열두 명의 대통령을 만나왔다.

4·19 혁명으로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부터 5·16 쿠데타로 물러나야 했던 윤보선, 부하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한 박정희, 군부의 입김에 눌려 8개월 만에 자리를 내놓은 최규하, 퇴임 후 '영어(囹圄)의 몸'으로 전락했던 전두환·노태우, 아들이 모두 옥살이를 해야 했던 김영삼·김대중,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노무현, 감옥에 갇혀있거나 가까스로 석방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대통령은 하나같이 국민들에게 슬픈 뒷모습을 보여줬다.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평가도 크게 엇갈린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남은 기간이라도 취임식장에서 국민들에게 선서했던 초심을 얼마나 지켰는지 스스로 묻고 또 물어보길 권면한다.

나인문 대전세종본부장
나인문 대전세종본부장

압둘 칼람 대통령처럼 청와대를 나설 때 빈손으로 나오기를 기대하진 않는다. 그러나 재임기간 중 국민들이 소망했던 대로 행하지 못한 일은 없었는지, 무엇 때문에 국민의 바람을 지켜주지 못했는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나오기를 희망한다.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일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라도 국민들에게 가슴으로 묵직하게 다가오는 그런 대통령을 우리도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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