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얼마전 고교동창생을 만났다. 얼마나 반가운지 마스크를 낀 채 서로 부둥켜안고 인사를 나눴다. 그후 우리는 가까운 식당에 가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도중 그 친구 왈, 글쎄, 집사람이 청소 해 달라고 하는데 좀 귀찮다고 짜증을 냈더니 며칠 나하고 말을 안하더라구, '그깟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참, 어쩔 수 없이 내가 미안하다고 했지, 하며 혀 끝을 차는 것이다. 듣고 있던 나는 그래, 잘 했어, 안사람이 다른 일로 마음이 많이 상했나 보지, 자네가 이해하게나, 그러면서 나는 그 친구의 말대로 그깟 '그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고 내심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주위에서 가끔 사소한 일 때문에 애인과 이별하고 절친과 절교도 하고 회사를 떠나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혼까지 하는 사례를 듣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의명분이 아닌 '그깟 사소한 일'로 사람과 조직을 떠나기도 하고 나아가 극단적인 일을 선택까지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깟 사소한 그 일 하나'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99도 상태에서 사소한 일이 1도를 증가시켜 100도의 기체로 만든 것이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은 사고 난 그일 때문에 관계가 틀어졌다고 생각하고 또한 아무것도 아닌 그 일 때문에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현재 드러난 '그 깟 사소한 일'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 그 사소한 일은 그동안 쌓여 있었던 99도의 스트레스에 1도를 더한 것이다.

우리는 1도나 99도나 똑같은 액체 상태에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99도의 경우에는 그 깟 사소한 상황하나로도 상태가 얼마든지 완전히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우 작은 일에도 예민하거나 인상을 쓰거나 화를 낸다면 그 사람의 스트레스가 터질 만큼 쌓였다고 여겨야한다. 그러므로 그 속에 쌓인 서운함, 스트레스를 빼내지 않으면 자칫 사소한 한가지로 빵하고 터지고 말 것이다. 자신의 자존심이 강할수록 내향적일수록 털어놓은 대상이 없을수록 칭찬만 받아왔던 사람일수록 99도가 되기까지 풍선을 빵빵하게 할 위험이 높다.

그러기에 만일 자신이 작은 일에도 예민해 지거나 짜증과 화가 나거나 우울하고 슬퍼해 진다면 스스로 위험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의 스트레스가 99도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용기를 내어 당사자와 솔직한 대화하든, 여행을 떠나든, 심리상담가를 찾아가든 그 온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오늘처럼 친구를 만나 솔직한 대화로 마음속에 잔재해 있는 응어리를 소통으로 풀어주어 긴장지수를 낮추어주어야 한다. 어쩌면 수다는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일런지도 모른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우리 삶은 사소한 것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무보다 큰 숲을 보라하지만 나무 밑의 풀은 보지 못한 채 말이다. 사소한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어쩌면 결국 큰 숲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무릇 사소함의 개념은 적거나 작아서 보잘 것이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소함의 개념 정의를 보면서 이러한 정의에 모순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사소함'은 너무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사소하다고 보는 자신의 편견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N. 로렌츠가 처음으로 발표한 "나비의 단순한 날개 짓이 날씨를 변화 시킨다"는 나비효과 (Butterfly Effect)이론은 우리가 지나칠 수 있는 작고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사소함의 가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사소함의 중요성을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의 인간관계는 원만해 질것이며 삶 또한 더 행복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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