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배경은 고등학교 시절, 체력장은 대학입시를 위해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요 자신의 체력을 잘 아니 만점을 못 맞아도 어쩔 수 없다. 체육 선생님은 그걸 용납할 수 없는지 우리를 남겨 지도할 생각인 듯하다. 그 배려가 내게는 불편하다. 주어진 과제는 몸을 앞으로 끌어당겨 상체를 위로 높이 들어 올리는 것으로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지만 시키니 할 뿐이다. 내 기록이 가장 저조해 앞에 나가 회초리를 맞는다. 꿈속에서도 감각이 살아있어 너무 아프다. 선생님은 그 차이만큼 수십 대의 회초리를 치고 나는 이건 심하다고 생각하며 맞다가 잠에서 깬다.

꿈을 깨고는 이건 교육적이지 않고 옳은 것도 아니라고 흥분한다. 그 거부할 수 없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싫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으니 칠십 년대 중반이었을 게다. 오십 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문화가 달라진 현재의 내가 그 시절에도 겪지 않은 꿈속의 일을, 잠이 덜 깬 몽롱함으로 판단한다.

꿈속에서 대들지 못하고 깨어나 흥분하는 내가 황당하다. 그 때에 이건 아니라 할 일이 어디 한둘이었나? 월요일이면 애국조회를 했는데 교련복을 입고 열병과 분열을 했다. 학생보다는 군인에 가까웠나 보다. 교장선생님 훈화도 위압적이어서 그분은 눈에 거슬리면 모두가 보는 가운데 불러내 따귀를 갈겼다. 그 속에서 어떻게 개성과 창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교사들의 구타는 일상적이었고 학교생활은 즐겁지 않았다. 그제나 지금이나 학교건물은 군대와 교도소를 너무도 닮았다고 한다.

난 집에서 막내였고 학교에서도 조용해 어디서나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어떤 일도 내가 주도적으로 해본 일이 없어 한 반에 60여명 학생들이 있었던 당시로는 교사들이 안심해도 되는 바람직한 학생이었을 게다. 학교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늘 학교의 일정대로 따라갈 뿐 나만의 개별성, 창의성은 없었다. 그 영향이 지금까지 남아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는 일이 적다. 수동적 사고와 행동이 몸과 마음에 짙게 배어 있다.

자의식과 상황판단 능력이 일찍 형성되어 억울한 일, 의롭지 못한 일들을 당할 때마다 분명히 내 의견을 제시하고 저항했더라면 어땠을까?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을 것이고, 중·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상의 삶에서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긴 같은 기간에 학교생활을 한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걸 보면 오늘의 나를 만든 요인이 오롯이 시대와 외부적인 것들이라 할 수만은 없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내게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선택이 어렵다. 남들에게 회색지대로 보일 테지만 큰 차이를 느끼지 못 하니 어쩌랴. 점심으로 자장면이나 볶음밥이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충청도 사람이라선지 느낌이나 깨달음이 한두 박자 늦는 것 같다. 남들 다 지나간 뒤에 출발한다고 부산을 떠는 격이다. 그렇다고 그걸 크게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한두 발 앞서고 뒤서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방향성과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 행하는가가 중요하지…. 이제 인생의 후반부에 들었다. 함께 출발했던 이들이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다시 만나는 지점쯤이다. 서로 앞뒤를 다툴 것 없이 이제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두 발짝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정을 나누며 지냄이 필요한 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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