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남편이 디스크 수술을 했다. 공교롭게도 간병인들이 코로나19에 많이 확진된 즈음이라 간병인이 없어 내가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당연하고 최선이라 생각했다. 입원 기간도 짧아서 부담되지 않았고 이번 기회로 멀어진 부부사이가 좋아질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일 뿐, 수술 첫날부터 부부싸움이 시작됐다. 남편은 내가 간병인처럼 능숙하게 해주길 바랐고, 나는 환자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병실인 것을 잊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불만과 짜증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 때문에 침상과 침상 사이는 물론 입구까지 쳐놓은 커튼은, 옆의 환자가 보이지 않아 다행이지만 병실이 더 좁게 느껴져서 감정 조절이 어려웠다. 회복을 기다리는 공간에서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갈등은 곳곳에서 부딪쳤다.

신경외과 병동 복도는 환자들이 가끔 보인다. 허리에 복대를 하거나, 보행보조기와 링거 대에 의지하여 운동하는데 자주 마주치는 부부가 있었다. 80대쯤으로 남편이 환자다. 아내는 늘 검은색 옷을 입고 붉은색 가방을 허리에 매고 있어 멀리서도 알 수 있다. 키가 작고 왜소한 남편은 링거 대를 밀고 아내 뒤에서 따라오듯 걷는다. 부부가 걷는 모습으로 애정의 거리를 가늠해 보는 나는, 아내가 앞서 걷는 것으로 보아 성격이 급하거나 애정이 깊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그날도 점심 먹고 병실 문 앞에서 복도 창가로 비치는 햇살을 감상하고 있었다. 부부는 운동시간인가 보다. 머쓱하여 한 발짝 병실 안으로 뒷걸음치는데 짜증 섞인 소리가 들렸다. "또 쌌어? 이그…."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밀었다. 어색한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걸음을 빨리했다. 링거 대 수액이 심하게 흔들렸다."그래, 먹었으니까 싸야지."나를 의식해서 일까,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나도 잠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다시 푸념의 소리가 들렸다. "먹기만 하면 싸!" 싼다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을 알기에 속이 울렁였다.

부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남편은 아무 말 없었다. 미안해서 인지,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인지, 아내 말에 대꾸할 힘이 없는 건지, 그도 아니면 그냥 순응하는 건지 알 수 없으나 그의 작은 어깨가, 내 남편 어깨와 겹치고 그동안 쏘았던 화살 같은 내 말들이 떠올랐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그분도 젊었을 때는 힘 있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늙고 병들어 자기 몸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나약한 존재가 되었다. 부부는 늙어 아파보면 살아온 흔적이 보인다. 서로를 사랑한 만큼 단단한 신뢰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마음으로, 갈피를 못 잡는 애증으로 또는 타인 같은 외면으로 삶의 온도를 드러낸다. 나는 보지 못하는 그 틈을 타인은 보고 느낀다. 나도 수술 한 남편보다 더 힘든 것처럼 감정의 응어리를 드러냈다.우리 부부 모습도 누군가 보고 있을 거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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