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고등학교 1학년 가량의 소녀가 있었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둘 다 아이 양육을 포기했다. 그리고는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이후 부모와는 연락이 끊겼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어느 늦겨울의 일이었다. 지병이 있던 할머니는 폐지를 주워 받는 돈으로 손녀와 둘이 살았다. 그러던 중 할머니는 지병이 악화되어 일을 못하게 되었다.

아이는 할머니 병수발까지 들어야했다. 아이는 집근처 편의점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편의점주는 나쁜 사람이었다. 아이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 갑질을 하고 알바비를 제때 주지 않았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았지만 교통비가 들지 않는 집 근처에서 어린 여고생이 구할 수 있는 알바자리는 드물었다.

알바비를 한 달가량 못 받았다. 그날도 아이는 끼니를 거른 채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배가 고팠지만 돈이 없었다. 아이는 점주의 허락없이 유통기한이 지난 김밥과 쏘시지를 먹었다. 다음날 점주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윽박질렀다.

그날 저녁 알바를 하면서 아이는 받지 못한 급여만큼 음식을 먹어치웠다. 친구들을 불러 평소 먹고 싶던 훈제닭다리와 콜라도 원없이 마셨다. 다시 편의점에 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튿날 점주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할머니에게 연락을 해서 아이의 행방을 물었다. 할머니의 연락을 받은 아이는 처벌이 두려워 가출을 했다.

돈이 필요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끼니도 해결할 수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성매수남을 유인하여 돈만 받고 도망치는 방법으로 생활비를 마련했다. 상경하여 PC방을 전전했다. 그곳에서도 돈이 떨어지면 성매매 사기로 생계를 유지했다. 아이는 운 좋게 작은 연예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유명해지면 부모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2인1실 원룸을 제공받았다. 난생 처음 갖은 아늑한 공간이었고 룸메이트는 가족 같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룸메이트가 며칠동안 외박을 하고 연락이 두절되었다. 아이는 룸메이트에게 사고가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되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신고자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가출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아이는 편의점 절도 혐의와 성매매 사기혐의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로부터 수 주 뒤 소년원에서 그 아이를 처음 만났다. 그때의 나는 영화에 나올법한 사건에 심드렁한 국선에 불과했다. 소년사건을 진행하면서 아이들 거짓말에 질리고, 소년들 못지않게 문제있는 보호자들 태도에 지치고, 비행 선도에 국가가 가지는 한계를 느껴 소년보호사건 업무에 지쳐갈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 덕에 난 변해갔다.

변호사는 성인재판에서 변호인이 되지만 소년보호사건에서는 보조인의 지위를 갖는다. 변호인은 형사 피고인의 죄값에 선처를 구하는 반면, 보조인은 비행소년의 선도에 적합한 처분이 내려지는 것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보조인은 선처호소만 하지 않는다. 큰 비행에도 아이의 훈육에 가족이 효과적이라고 보일 경우 가족에게 돌아가도록 변론하기도 하고, 작은 비행에도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시설유치를 호소하기도 한다.

아이의 비행은 점주의 임금체불이 원인이었다. 그때 든든한 보호자가 있었다면 임금체불을 신고하여 오히려 점주가 처벌받았을 일이었다. 그랬다면 이후의 절도나 성매매 사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 곁에는 보호해줄 어른이 없었다. 자유를 원하는 아이의 눈빛 앞에서 나는 고민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보호시설을 피할 수도 있었으나, 지금 아이를 시설 밖으로 보내는 것은 비행할 수밖에 없는 비정한 현실로 내던지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보호시설에 위탁해 달라고 변론하였다. 시설로 보내야 한다는 나의 변론에 아이는 놀란 눈을 했다. 판사님은 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결국 아이는 보호시설로 보내졌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났다. 이제 그 아이는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변호사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나쁜 점주, 자신의 성을 사려한 성매수남 같은 나쁜 어른에 이어서 자기를 시설에 유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이상한 변호사로 여기고 있을까? 처음 자신을 도와주는 변호사님이 오셨다고 밝게 웃던 그 아이의 눈이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그때 그 아이는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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