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인생은 밥이다. 밥 한 끼 한 끼가 모여서 살이 되고 삶이 된다. 오늘 한 끼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고 끼니이다.

삼시 세끼란 말이 좋다. 밥을 잘 챙겨 먹을 것 같아서다. 끼니마다 따순밥 해서 한솥밥 먹던 시절이 그립다.

'밥심으로 산다'고 믿었던 어머니는 고된 일상에서도 따순밥을 지으셨다. 쌀을 씻어 가마솥에 안치고 불 지피면 밥물 끓어오르는 소리, 아궁이 잔불에 된장찌개 끓이고, 도마에 호박이며 감자 써는 소리가 좋았다. 부글부글하던 밥물이 잦아들면서 나는 밥 냄새는 언제 맡아도 질리지 않는다. 막 뜸 들여진 밥을 주걱으로 뒤적이면 흰 김이 뿜어져 올라온다. 고슬고슬 잘 지어진 밥이 식욕을 돋우던 시절.

늦은 귀가를 하는 자식을 위해 아랫목에 고봉밥을 묻어두던 어머니. 객지에 나간 자식이 행여 밥을 굶지는 않을까 늘 부뚜막에 밥 한 그릇 떠 놓으셨다.

'밥'에 관한 전시 포스터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비가 오는지 우비를 입은 채 공원 벤치 가장자리에 엉거주춤 앉아 밥을 먹는 노인. 걷어 올린 바지 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다리, 밥과 반찬이 한 번에 담긴 그릇을 숟가락으로 입에 흡입하듯이 먹는 모습이다.

흑백으로 처리된 사진은 코로나 이전에 공원에서 무료급식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벤치에 앉을 자리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비 가림 천막이나 식탁도 없이 풀밭에 앉거나 서서 드시는 밥 한 끼. 삶의 애환이 담긴 사진을 보며 가슴이 탁 막혔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요즘, 몇 세까지 사는가보다 어떤 삶의 질을 유지하며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경제적 궁핍, 사회적 소외, 치매나 뇌졸중 같은 돌봄이 필요한 질환 등 노년의 삶에 등장하는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심각하다.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하는가. 일하기 위해 밥을 먹는가. 이유야 어떻든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허기는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온다.

요즘은 밥솥에 밥을 안칠 때나 주걱으로 밥을 풀 때 내가 혼자라는 것을 실감한다. 식구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던 시절이 얼마 전이었다. 몇 년 사이에 혼자가 되어 끼니를 대충 챙겨 먹으며 생각한다. 인생의 두 번째 바퀴는 괜찮을까. 혼자 평생 살 수 있을지, 나이 듦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밥으로 이어지는 기본적인 삶과 관계의 끈이 허물어지고 있는 요즘, 장수가 과연 축복일까.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TV를 친구삼아 밥을 우적우적 씹다 보면 어릴 적 두레 밥상에 비집고 앉아 먹던 음식을 떠올린다. 추억을 소환하는 음식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혀로 굴리며 그 맛을 음미해 본다. 밥 비벼서 여럿이 숟가락으로 퍼먹던 커다란 양푼도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해도 식구들 부대끼며 거친 음식 달게 먹던 시절이었다.

'밥'하면 따끈따끈한 밥의 온기가 입안에 그득해진다. 밥 한 끼라는 말에는 부뚜막의 온기가 있다. 따순 밥 한 끼를 같이 먹는다는 것은 밥 이상의 가치가 있다. 밥 냄새도, 사람 냄새도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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