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마음을 들킨 듯하다. 선생은 피곤하냐고 물어 아니라고 급히 답한다. 하지만, 오늘은 여느 날보다 인간관계가 어려워 정신적으로 번잡한 날이었다. 퇴근하고 저녁밥을 급히 지어먹어 소화도 되지 않은 터이다. 이어 몸 구석구석을 당기고 이완하니 눈이 절로 감기고 바닥에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다. 천근만근 육중한 무게로 가라앉는 이 눈꺼풀을 어찌 감당하랴. 반쯤 감긴 실눈에 동작 또한, 느려지니 선생이 지적할만하다.

정녕코 K선생의 요가는 남다르다. 몸동작을 시연하며 매번 몸속 깊이 들어가 살펴보라고 주문한다. 그 깊이는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범위를 초월한 뼛속의 골수 아니 아마도 신경세포를 건드리라는 말일 게다. 나의 요가 실력은 아니 실력이라고 하기엔 우습다. 아파트 시설에서 수십 명이 기본 동작만 배운 터다. 요가 동작이 미숙하고 손을 봐주지 않아 설렁설렁 배웠으니 오죽하랴. 굳은 뼈는 제대로 펴지지 않아 아마도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 선생이 나에게 제대로 된 동작을 원한다면, '나이 타령'으로 선생의 말을 막고 싶다. 정신과 몸이 따로 노는데, 선생은 인문학적 내용을 몸속 깊이 인지하란다.

요가를 십수 년 배우며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격이다. 예전의 요가와는 확연히 다르다. 선생은 얼굴에 드러난 표정 하나, 팔 동작, 손가락 발가락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인다. 심지어 바로 서기를 수없이 주문하며 척추 바로 펴기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의 감정에 따라 수업의 인지 상태도 다르니 참으로 간사하다. 지난해 목이 돌아가지 않아 한 달여간 깁스했던 불편함을 생각하면, 정녕 입으로 나올 소리는 아니다. 의사는 물리치료를 권하는데 바이러스 전염으로 다닐 용기도 없고 두려웠다. 그즈음 아파트단지에 개설한 요가도 폐쇄되어 고심 끝에 선생님을 집으로 모셨던 터다.

그래, 이 무슨 행복한 투정인가. 모두가 내 몸을 제대로 쓰고 틀어진 뼈의 마디를 정렬하는 과정이다. 그래도 오늘은 내 이름을 왜 그리 부르는지 야속하다. 피곤함에 절은 불쌍한 인생을 알아달라고 눈이 말하는데, 선생은 도통 알은척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니 선생은 진정한 스승이다. 신경 신호를 바탕으로 한 바른 직립 자세는 인간의 생애에 근골격계, 심폐계, 뇌신경계의 운명을 좌우한다며 일으켜 세운다. 나의 지친 몸을 제대로 바라봐준 분이다. 요가를 마친 후에 엔돌핀이 돌아 몸은 씻어낸 듯 개운하고 정신은 더욱 맑아진다.

몸 풀기는 몸이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다. 두 아이를 낳고 산후통으로 여기저기 고질병이 생겨 병원을 여러 차례 다녔던 적이 있다. 생명을 탄생하는 거룩한 행위도 '몸을 푼다'라는 말을 쓴다. 몸을 풀고 닫기를 잘해야만 후유증이 없다. 팔월이면, 임신한 딸이 몸을 푼다. 얼마 전 딸은 태아가 밑으로 내려가 배의 통증과 다리가 저려 걷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대를 이어 출산의 고통을 겪는 딸이 대견하면서도 어미로서 안타깝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여성의 첫 몸풀기는 생명을 만드는 원초적 공간에서 시작이다. 아니 자궁이 정자를 받아들인 그 순간, 사랑하기에서부터다. 인간관계도 굴곡진 내 몸도 깊이 사랑하면, 문제점이 드러난다. 퇴화하는 어깨와 산후통으로 결리는 천장관절도 제대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모든 일에 다시 사랑하는 일이 필요하다. 굳어진 뼈와 허물어진 근육을 바로 서게 하고 싶다. 새로 태어날 몸을 고대하며 꼬부라진 마음을 살핀다. 오늘도 지상에 별들이 가물거리는 밤, 요가로 몸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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