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지난달 27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는 '지방 발전을 통한 국가 경제의 도약'을 강조하며 지역균형발전 15개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기회발전특구'(ODZ, Opportunity and Development Zone)다.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규제 특례로 기업들의 지방 이전을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ODZ를 선택하고 기업이 원하는 규제를 모두 푼다는 점에서 기존 특구와 차별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진정한 지역주도 균형발전', '혁신성장기반 강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지역 고유 특성 극대화' 등의 약속과 함께 지역균형발전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철학 위에서 풀어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패러다임'(paradigm)은 1962년 토마스 쿤(Thomas Kuhn)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 처음 등장한 용어로서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인식 체계, 사물에 대한 이론적 틀을 의미한다.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고 기본 가정들이 도전을 받게 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극복된다는 논리다. 새 정부가 현재의 지역문제에 대해 역발상에 의한 과감한 돌파가 필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5년 단임제로 인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 기조는 물론 지역 정책의 방향과 전략에서 큰 변화를 겪어 왔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도권 인구 비중이 전국의 50%를 넘어섰고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은 여전하다. 2010년대 들어서는 여성들의 수도권 유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의 변화에 기인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정보통신산업이 발전하면서 관련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선호하는 청년층과 여성들에게 제조업?남성 위주의 비수도권 산업구조와 일자리는 매력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지방소멸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권 교체기마다 등장한 '지방중심 시대' 연관 공약과 정책들은 지방소멸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지방소멸이 '수도권 일극 체제'의 공간 구조와 깊게 연결돼 있어 지역문제를 파편적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접근하기를 주문한다.

해외 연구 동향에 따르면, 지역정책은 주요 수단을 기준으로 사람기반정책(people-based policy), 공간연계정책(spatially connective policy), 장소기반정책(place-based policy)으로 나뉜다. 또한 시장 시스템만으로 지역균형발전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신정부는 우선 장소보다 사람에 초점을 둔 사람기반정책을 추진하되, 공간연계정책이 사람기반정책을 적절하게 보완할 수 있다는 점과 직접적으로 장소를 대상으로 하는 장소기반정책의 유효성 등을 감안해 정책조합(policy mix)을 구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새 정부의 국정 비전들이 효과성 면에서 미흡하게 평가됐던 결과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기존 추진 정책과 신규 정책 간 연계성 부족, 중앙부처 간 칸막이 운영, 정책 조정 및 통합 기능 불충분 등의 지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근호 청주대학교 산학취창업본부장
노근호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재정력을 대폭 강화해 지자체가 주도적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이 이행되려면, 중앙-지방 간 수평적 관계를 기반으로 단기적 정책실험이 아닌 중장기적 협력계획 수립, 각 부처 관련 예산을 통합한 지역자율 단일예산제도(single pot budget) 도입 등의 담대한 시도가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색다른 국정 비전이 아니라 확고하고 지속적인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굳건한 의지다. 관건은 실행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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