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에티오피아에 내셔널 파크가 있다. 그곳에 들어서면 실망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말이 파크이지 거의 아무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광활하긴 하다. 입구에서 경찰의 입회 하에 지프를 탄다. 함께 움직이다보니 가젤 몇 마리가 보인다. 지프에서 내려 멀찌감치서 바라보았다. 다시 지프를 타고 광활한 초원을 또 달렸다. 경계에 닿았다. 경계선이라고 해봤자 별 게 없었다. 경계 바깥이 환하게 보였다. 간단한 방식으로 경계 표시를 해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곳이야말로 천연적인 공원으로 내겐 보였다. 인위적인 것이 거의 없었다. 광활한 초원의 경계선에 단순한 울타리를 친 것이 시설의 거의 다였다. 동물들은 경계선 안팎으로 자유롭게 이동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동물이 눈에 띄면 보는 것이고 없으면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동안 보아온 것들 즉 꽉 차고, 시설물이 많고, 볼거리 연속인 공원이 왠지 가식적인 느낌이 들면서 이 소박하면서도 친자연적인 공원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내셔널 파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티오피아가 가난하기에 그런 실정이 감안되어 만들어졌겠지만 말이다.

내 고향 청주에 대해 말을 하라면 이렇다 내세울 게 없다고 여겼었다. 청주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것 같다. 문화 기획하는 사람들은 대개 경주, 부여 등과 비교하면서 청주에도 뭔가가 있다고 우기길 좋아한다.

내가 보기에 그런 태도는 콤플렉스의 발로다. 없으면 없는대로 보여주는 것이 낫다. 그렇다. 청주는 보여줄 것이 없다. 그러나 몇 가지는 특이한 것들이며 청주만의 보물이다.

흥수 아이는 청주 상당구 문의면 두루봉에 있는 동굴에서 발굴되었다. 사만년 전 유골이라고 밝혀졌다. 가슴팍에서 국화꽃가루가 발견됐다.

프랑스의 쇼베 동굴 벽화는 삼만년 전이다. 독일에서 발견된 독수리 뼈로 만든 피리는 삼만 오천년 전, 매머드 뿔을 깎아 만든 사자 아이는 삼만 육천년 전이다. 그러니까 흥수 아이는 이들보다 빠르며 그 아이가 살던 무렵에 죽음에 대해 애도 문화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일만 오천년 전에서 일만 칠천년 전에 미호천이 흐르는 지금의 옥산면 소로리에 볍씨가 있었다.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이다. 야생벼에서 재배벼로 가는 과정의 순화벼이다.

시간이 또 흘러 고려 시대엔 금속활자 직지가 만들어진다. 세계 최초이다.

내 고향 청주를 생각할 때 일단 백지로 돌려놓곤 한다. 글을 쓰는 나의 습관 탓이다. 청주에 뭐가 없다느니 아니야 산성이니 정북토성, 철당간 등 이것저것 많다느니 하는 일체가 내 가슴에서 지워진다. 자격지심이나 콤플렉스, 그 반대급부 성격의 과장, 견강부회가 사라진 백지 같은 마음에 저 세가지만 떠오르도록 상상한다.

사만년 전에 청주에서 한 아이가 죽는다. 그 죽음을 애도하려 사람들은 그의 주검에 국화꽃가루를 뿌린다. 시간이 흘러 벼가 미호천변에 자라는데 누군가 훑어 먹는다. 선사시대에 어린 아이의 주검에 꽃가루를 뿌리고 세계에서 가장 일찍 벼를 훑어 먹던 이 마을이 다양한 연대기적 시간을 지나 고려에 이르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낸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청주엔 국립청주박물관, 청주백제유물전시관, 청주고인쇄박물관 등 박물관이나 전시관이 제법 있다. 하나의 박물관으로 통폐합해 이 글에서 지금껏 쓴 내용을 주축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이름은 청주박물관 정도면 좋을 것 같다. 선사 시대의 유골 빼놓고도 세계 최초가 두 개이다. 충북대학교박물관엔 코끼리의 상아, 코뿔소의 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청주국제공항에 상기한 것들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시설물을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청주국제공항의 지금까지의 이미지가 청주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라면 청주가 가진 것들로만 잘 꾸려도 바깥에서 청주로 오는 것으로 바뀔 수도 있다. 바깥에는 해외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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