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행복에 관하여③

다음은 요한복음(12:23-25)에 나오는 말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우리는 행복할 권리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다. 행복한 삶은 먼저 자기 정체성을 갖춘 삶이어야 한다. 복제품과 같은 삶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 자신의 기질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 노예인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을 빌려 세상을 보는 사람, 인생의 주어진 시간을 자기 맘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이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시대나 그렇듯이 오늘날에도 인간은 노예와 자유인으로 분리된다.

만약 하루의 3분의 2 정도를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그가 정치가이든 상인이든, 혹은 관리나 학자이든 그저 노예일 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 김욱 역, '니체의 숲으로 가다', 지훈, 2004)

우리는 자유민이어야 한다.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임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노예가 되어선 안 된다. 그래야 세상에 홀로 당당히 설 수가 있다.

루소는 '에밀'에서 말한다.

"자연과 사회제도 사이에서 투쟁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간이 되느냐, 시민이 되느냐 사이에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인간인 동시에 시민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연인은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한다. 그는 하나뿐인 통일체로서 오로지 자신과 비교되는 절대 완전체이다. 시민은 분모에 의존하는 분수들이 지닌 통일성만 가질 따름이다. 시민의 가치는 사회 조직이라는 전체와 맺는 관계로 결정된다. 좋은 사회제도는 인간의 타고난 성질을 어떻게 바꿀지, 인간에게서 어떻게 절대 실존을 빼앗고 상대 실존을 부여할지, 절대 실존으로서 나를 어떻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만들지 아주 잘 안다. 그 결과 각 개인은 자신을 더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라 통일체의 일부라고 믿으며, 전체의 일부가 아니라면 더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로마 시민은 카이우스도 루시우스도 아니다. 로마 시민은 로마인일 따름이다. 시민 질서 안에서 자연에 품는 감정과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언제나 자신과 모순을 일으켜 갈등에 빠지고, 언제나 자신의 자연적 경향과 시민으로서 의무 사이에서 표류하므로, 인간이 되지도 못하고 시민이 되지도 못한 채 떠돈다. 그는 자신에게도 좋은 사람이 못 되고, 타인에게도 좋은 사람이 못 된다. 그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한 시민, 그러니까 프랑스인, 영국인, 자본가가 될 터이다. 마침내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리라." (J. J. 루소 저, 정봉구역, '에밀', 범우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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