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영희 수필가

멀리 있는 친구가 소포를 보내왔다. 반가워서 얼른 뜯어보니 아름다운 도자기 그릇이 들어 있다. '걸작이 가득 담기길….'이란 함축된 표현이 따뜻하게 전해온다. 도자기 그릇이 잘 왔다고 했더니 친구 대답이 걸작이다.

"유튜브 잘 봤어. 가까우면 북 콘서트도 참석했을 텐데 성황리에 끝났다니 나도 꿈을 이룬 듯 기뻐. 음식을 담듯 감동적인 너만의 소설을 가득 담으라고 예쁜 것 보다 큰 것으로 골랐어. 너는 그전에 옥수수를 가득 담아 주었는데…."라고 한다.

그렇게 깊은 뜻을 담았다니 벌써 그릇이 가득 찬 듯 가슴이 벅차오른다.

'비망록, 직지로 피어나다'출간 이후 독자들의 반응에 대한 질문에 가감 없이 한 답변이 떠올랐다. 가독성이 있고 재미있어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다는 독자부터, 자기가 읽은 역사소설 중 가장 재미있었다며 껍질째 먹는 사과를 한 상자 보낸 분도 있으셨다는 말을 부연했다. 책 받고 북 콘서트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미안해하더니 유튜브를 보고 부담을 느꼈나 싶어진다.

우리가 여고 다니던 시절은 너나없이 가난했다. 한 집에 일고여덟씩 되는 자녀들 세 끼 해결하기도 힘들던 시절이었다. 친구는 이웃에 홀어머니랑 둘이 살고 있어서 더 어려웠다. 옥수수나 고구마를 찌면 다른 형제들 눈치 보며 갖다주곤 했다. 가끔, 나는 먹었다며 도시락을 건네주기도 했단다. 책 본 것은 기억을 잘하는데 다른 것은 기억 못 하는 내게 얼마 전 친구가 한 말이다. 성적을 우선시하던 범생이여서 좀 이기적이었을 것 같은데, 그녀는 인간적으로 곱게 채색시켜 주는 좋은 친구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며,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매일 일어난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 한다. 사람과의 인연도 인연이지만 눈에 보이는 사물도 인연으로 엮여있다."라고 피천득 선생은 말씀하셨다.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소나기가 쏟아지는데 처음에는 비(非)라는 부정적인 소리로 들렸다. 친구와의 오랜 인연을 떠 올리자 순수하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 모든 걸 씻어주는 긍정적인 비단 소리같이 들린다. 같은 빗소리도 마음을 통하여 다르게 스며든다.

비가 잦아드는 흙길로 산책을 나서는데 아이들이 여러 명 쪼그리고 앉아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다. 행운의 클로버가 없다고 투덜대는 아이에게 한 아이가 말한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지만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래. 나는 이렇게 보석 같은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가는 예쁜 클로버가 제일 좋아."라고 한다. 아이들은 다 동의 한다는 듯 손뼉을 치며 무지개를 좇아간다. 빗소리가 마음에 곱게 스며들게 하는 아이에게서 또 한 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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