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은화 청주시 흥덕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한참 유행했던 적이 있다. 필자도 드라마의 배경이 된 그 시절을 지낸 세대라 그런지 지금 시청하더라도 한자리에서 완주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감이 되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게 봤었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를 보며 이웃사촌도 또래 친구도 누구랄 것도 없이 가족처럼 편안하게 오가며 스스럼없이 지내고, 아픔은 나누고 좋은 일은 내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하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정이 가득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성인이 될 때까지 한곳에서 자란 필자는 요즘은 조금 낯선 단어가 된 고향 친구들이 있다. 기억도 안 나는 새마을유아원 졸업사진부터 함께 했던 그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잊고 있었던 서로의 유년 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고, 숨기고 싶고 잊어줬으면 하는 흑역사도 강제로 상기시켜 주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재산이고 보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시간 거리의 등굣길을 같이 걸어 다니며 했던 얘기 또 하고 듣기를 반복하고, 안채와 떨어진 사랑방이 있는 친구 집에 공부한답시고 모여앉아 야식만 먹다 헤어진 날이 허다했지만 응답하라 속의 그 친구들처럼 그때는 마냥 함께 있는 시간이 좋기만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이렇게 소중한 재산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이사라는걸 모르고 살 정도로 한 곳에만 정착하셨던 우리네 부모님들의 탁월한 선택(?)과 선뜻 사랑방이라는 공간을 내 주었던 친구 부모님의 헌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이기만 하면 왁자지껄 시끄럽고 이불이며 방바닥에 과자 부스러기가 한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 한 번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철이 없었던 거 같아 죄송스럽기만 하다. 아무튼 나를 비롯한 고향 친구들은 그 사랑방 덕분에 큰 사고 없이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도 그렇고 얼굴은 누렇게 뜨고 햇빛 보기도 힘들었던 수험 시절도 무탄하게 보낼 수 있었다.
작년부터 구청에서 경로당 업무를 맡고 있는 필자는 경로당을 보면 학창 시절을 보낸 그때의 사랑방이 떠올라 정겹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가장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 평균 수명은 길어지는데 직장과 교육 등 다양한 이유와 잦은 이사로 오랜 친구를 찾기 힘든 요즘, 살아온 세월을 공유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관심을 나눌 수 있는 경로당은 내가 무탄하게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랑방처럼 어르신들이 외로움은 덜어내고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돕는데 꼭 필요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2년간은 코로나19로 인해 동년배끼리만 통하는 공감 거리를 나누고 서로의 외로움을 보듬어주었던 정겨운 사랑방이 열고 닫기가 반복됐다. 갈 곳이 없어진 어르신들은 공원 벤치 등 이야기를 나눌 곳을 찾아 전전했는데, 다행히 사랑방이 다시 열렸다. 다시 활짝 열린 경로당에서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무색하게 어르신들이 활기를 되찾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