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난영 수필가

지난해 청주에서도 뮤지컬 '캣츠' 탄생 40주년 내한 공연이 있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 작곡, 카메론 매킨토시 제작의 뮤지컬 '캣츠'는 T.S 엘리엇의 우화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토대로 제작한 뮤지컬이다.

일년에 한 번 있는 고양이들의 축제 '젤리클 볼'에서는 매년 한 고양이를 선택하여 천상의 세계로 보내어 새로운 '젤리클' 삶을 살게 한다. '젤리클 볼'에 모인 각양각색 고양이들은 모두 독특한 인생 경험을 가지고 있다. 새로 태어날 고양이로 선택받기 위해 풀어 놓는 그들의 개성 있는 삶에는 인생의 단면이 녹아 있다. 고양이들의 독특한 삶만큼이나 다양한 곡조로 감상할 수 있었다.

눈곱은 덕지덕지 털은 부스스하고, 허리는 굽다 못해 동그랗게 말려 있는 고양이가 카페 정원을 맴돈다. '캣츠' 공연을 보고 나니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 쇠락의 길로 가는 고양이에게서 동병상련의 정이 느껴졌으나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해도, 뮤지컬 '캣츠'의 늙고 지친 그리자벨라가 떠오르며 눈에 밟혔다. 그리자벨라도 한때는 어떤 젤리클보다도 아름다웠고 매력적이었다.

욱욱한 꽃향기에 취한 지난해 사월 어느 날이다. 햇발의 현을 타는 봄의 왈츠를 즐기는데 고양이 집이 보인다. 마음 약한 딸이 병든 고양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음을 직감했다. 딸의 말랑말랑한 정서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고양이가 행운을 가져다주고 불운을 막아주는 영물로 취급했으나, 내가 어린 시절에는 요물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딸은 영양제까지 사다 먹이며 온갖 정성 다했다. 한 달이 지나자 굽었던 허리도 많이 펴졌다. 주인에게 보답하려는 듯 집 주변을 정찰한다. 어느 날 쥐새끼도 잡아다가 딸 차 밑에 놓았다. 깜짝 놀라 알아보니 보은 하는 거란다.

젊은 고양이가 또 들어왔다. 며칠을 굶었는지 바짝 마르고 비실비실했다. 딸의 보호를 받은 고양이들은 아주 건강해졌다. 한 마리일 때는 야옹이라고 했으나 두 마리가 되고부터 입양한 달 사월과 오월로 불렀다.

걱정과 달리 귀염둥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예뻐하는 사람에게는 발라당 드러누워 강아지처럼 애교를 떤다. 고양이의 배 부분은 연약하고 약한 부분이라 웬만해선 잘 보여주지 않는단다. 자신의 약점이자 생명과도 직결되는 부분인 배를 보이며 눕는 것은 그만큼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눈도 나쁘고 사냥도 할 수 없어 죽어가던 사월이는 올해 유월까지 살다가 갔다. 딸이 거두지 않았으면 지난해 갔을 것이다.

젤리클 고양이들의 지도자가 그리자벨라를 고양이들의 천국, 헤비사이드 레이어로 올라가 다시 태어날 고양이로 선택하고, 그녀를 마법의 타이어에 태워 하늘로 승천시킨다. 이로써 일 년 중 단 하룻밤만의 고양이의 축제는 막을 내린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즐거움과 함께 교훈적인 메시지를 주는 '캣츠', 인간의 희로애락, 죽음에 대한 인식, 과거에 대한 그리움 등 고양이도 인간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사월이의 다음 생을 위해 양지바른 곳에 수목장했다. 혼자 남은 오월이는 사월이를 잊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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