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현대에 들어와서 의사소통이란 용어는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무릇 의사소통이란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의사전달과 상호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사소통의 유형은 언어적 의사소통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침묵은 어떠한가?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조용히 마음속으로 그려보며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 자체로 카리스마 분위기를 뿜어내 상대를 압도한다. 이처럼 무조건 입을 때지 않는 게 침묵은 아니다. 침묵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상대의 진면목을 확인 할 수 있다.

언젠가 책에서 읽는 내용이 오늘따라 불현 듯 뇌리를 스친곤 한다.

'나는 크리스티나가 상상한 것처럼 민주주의가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011년 1월 12일 총기사건이 발생한 미국 애리조나 주 남동부의 투산지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는 미국 대통령의 대중 연설 역사상 가장 낯선 광경이 벌어졌다. 총기사건의 희생자 중 한명인 크리스티나의 이름을 언급하던 오바마 대통령이 갑자기 연설을 멈춰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술렁 거리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연단에 놓인 프롬프터에 문제가 생긴건가?'

째깍 째깍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오바마는 말없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호흡과 호흡사이에서 비통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슬픔의 덩어리 같은 것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듯 했다. 오바마의 시선이 허공을 닿았다. 그는 닿을 수 없는 아득히 먼 공간을 쳐다보는 듯했다. 오바마는 눈물을 참으려는 듯 두 눈을 연신 깜박였다. 복받치는 슬픔을 억누르며 감정을 추스르느라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오바마의 어깻죽지가 흔들렸다. 51초의 정적이 흐른 뒤 오바마는 어금니를 굳게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연설을 이어나갔다. 그의 음성은 무거웠다. 무거웠으므로 공중에서 낮게 깔리며 천천히 추모객의 가슴을 향해 퍼져나갔다.

말 그대로 '51초 무언 (無言)연설' 이었다. 사람의 가슴으로 번져와 또렷하게 새겨지는 말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역시 미국 국민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아로새겼다. 당시 미국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이 보여준 이례적인 모습과 언품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오바마의 연설이 이렇듯 찬사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바마는 말을 잘 하기 위해 애쓰기 보다 특정한 지점에서 말을 거두어 들이기 위해 애썼다고, 생각한다. 침묵의 가치와 하중(荷重)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렇듯 침묵이라는 '비언어의 대화(non verbal communication)'의 힘은 강하다. 침묵은 차마 말로할 수 없는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함축하고 있으며 종종 사람들에게 백마디 말보다 더 무겁고 깊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침묵은 보이지 않는 힘이다. 어쩌면 침묵은 말 실수를 줄이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무릇 말은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걸 아무 생각없이 대화라는 식탁위에 올려놓다 보면 꼭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서양 경구중에도 '웅변은 은(銀), 침묵은 금(金 )'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선인들의 생각은 동서양이 그리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중요한 것은 말을 잘 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때에 말을 거두고 진심을 나눌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오늘도 우리는 많은 사람과 서로 대화를 나누며 삶의 여정을 이어가곤 한다. 다양한 의사소통 방법이 있겠지만 결국 의사소통이란 통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도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 한 지인이 나에게 들려준 '숙성하지 못한 말은 오히려 침묵만 못하다 '라는 그 말이 가슴을 저려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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