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등줄기에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있어 삼색이라고 불리는 길고양이가 살고 있다. 매미가 굼벵이로 있었던 7년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우렁차게 울어대던 여름날 새벽녘에 아기 울음소리로 착각할만한 고양이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고양이가 한참 격하게 울어댈 쯤 중년 남자가 "야, 조용히 해"라며 호통을 쳤고, 신기하게도 고양이가 울음을 딱 멈췄다. 고양이는 중년 남자의 호통을 본능적으로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직감하고 민첩하게 반응했다.

고양이가 울부짖던 다음 날 K를 만났다. K는 팔순 중반이 되신 엄마가 세균 감염으로 퉁퉁 부어오른 새끼손가락 수술을 받게 되어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얘기부터 꺼냈다. 분당에 살고 있는 언니가 입원을 도왔고, 하룻밤을 간호했단다. 청주에 살고 있는 둘째인 K는 큰 수술도 아니고 거동이 불편한 것도 아니어서 병실에서 자지는 않고, 1주일 입원 기간 내내 먹을 것을 사서 찾아뵙고, 몇 시간씩 엄마 이야기를 들어주며 애를 썼다고 했다.

그러던 중 K는 "의사선생님 회진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라"는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 순간 K는 엄마가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음이 느껴져 심기가 불편해졌단다. 평소 엄마는 부탁할 일이 있어도 자신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언니를 통해서 일을 처리했다고 한다. 그 날 언니가 전화를 한 것도 엄마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 느껴져 K는 엄마에게 "부탁할 일이 생기면 언니에게 전화하지 말고 자신에게 직접 말해 줬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 했고, 언니에게도 "엄마로부터 전화가 오면 자신에게 직접 전화하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간청했다고 한다.

K는 이틀 전에 엄마와 언니에게 간곡히 부탁했던 말이 전혀 수용되지 않고 무시당했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퇴원 하는 날에 엄마는 매일 병문안을 했고, 퇴원을 하는데 도움을 줄 자식이 언니가 아니고 자신임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직접 도움을 청하지 않았고, 언니 역시 자신이 부탁했던 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화해서 "퇴원하란다."는 엄마의 말을 전하며 "얼른 퇴원 수속 밟으러 가라"는 지시까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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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언니에게 엄마가 직접 부탁하지 않으면 퇴원하는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단다. 언니와 통화 후 10여분쯤 지나 엄마가 전화를 해서 "오늘 퇴원하란다."는 말만 툭 던졌고, "오늘 시간이 되면 퇴원을 도와줄 수 있니"라며 부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을 엄마가 직접 부탁하지 않고 말만 흘려도 알아서 해드렸던 K는 이번만큼은 직접 부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 "병원에 가요, 가지 말아요."라는 단답식 질문을 던졌단다. 엄마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네 마음대로 해라"며 끝내 부탁하지 않았고, 재차 "엄마가 와달라고 부탁하면 갈 거고, 와달라고 부탁하지 않으면 안 갈 거예요"라고 쐐기를 박자 성질을 벌컥 내며 "그럼 네가 와야 퇴원을 하지"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고 한다. K는 불편한 심기를 다잡고 엄마의 퇴원을 도와 드렸고, 늦은 점심을 사드렸다고 했다.

중년 남자의 호통에 대한 길고양이의 경청과 수용은 생존의 역동이었다. K의 간곡한 부탁을 경청하지 않고 무시했던 엄마와 언니의 심리적인 역동은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다.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상대방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는 극도의 이기심은 건강한 관계에 독이 된다.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경청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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